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은 한국의 호미장인 석노기 할배가 만든 호미다. 호미 중에 가장 비싸서 10불이 넘지만 인기가 좋고 제값을 한다. 아마존 정원용품에 호미를 치면 인기상품중에도 최고다. 안 써본 이는 있어도 한번만 쓰는 이는 없다.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는 인기만점 집들이 선물이다.
호미는 칼, 삽, 곡괭이, 망치로 쓸 수 있는 만능돌이고 남편이 하는 전기공사를 할때도 쓸모가 많아서 종종 빌려간다. 무엇이든 하나씩은 여유가 있어야 안심하는 나는 호미가 좋다고 하면 냅다 줘버리고 또 주문하면서 아마존은 내가 먹여살린다고 큰소리치는 호미 전도사다.
옛부터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은 딸 내보낸다고 한다. 거칠고 강한 봄볕에 그을리면 매일 보던 서방님도 몰라본다며 못된 엄마가 며느리보다 딸을 더 아끼는 마음을 표현한다. 이제 나는 시어머니, 친정엄마도 없고 가장 윗전인 시할머니인데 나는 왜 봄이 되면 텃밭으로 나가는걸까? 봄이 오고 4월 5일 식목일이 지나 온갖 것들이 연두 빛깔로 바뀌기 시작하면 나는 한국에선 봄이라며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미국에선 5월 마더스 데이가 지나서 초록초록이 되면 텃밭농사를 시작하라는데 해마다 못 들은척 졸갑을 떤다. 부활절이 되면 더는 못참고 온갖 씨를 뿌려 놓고 반쯤은 얼어 죽이면서도 모종을 사러 다니느라 바쁘다. 미국 할머니들도 졸갑스러움은 마찬가지다. 서로 웃고 그나마 튼튼한걸로 고르느라 홈디포는 바글바글하다. 그렇게 심은 모종에 어느날 늦추위로 얼음비가 내리면 내가 덮는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저 어린 모종들을 지켜주소서!
눈이 녹은 뒤부터 조르고 졸라 견디다 못한 남편이 동네 아줌마들에게 다 보여준다며 말려도 굳이 비쩍 마른 웃통을 벗고 곡괭이로 온 땅을 파 헤쳐주고 구수한 퇴비를 한차 가득 쏟아 부으면서 괜히 아까운 돈 많이 쓴다며 바람잡는 나에게 우리만 영양가 있는 거 먹을 게 아니라 과일나무와 텃밭한테도 좋은 거 먹이자며 겨울내 발효시킨 음식물 찌꺼기 퇴비까지 뿌려가며 돈을 아낌없이 쓴다.
중국놈 같지않게 생긴 옆집은 지나치게 알뜰해서 뭐든지 우리집으로 빌리러오고, 남에겐 지나치게 친절한 남편은 우리밭 땅 파다가 옆집 울타리 만드는 걸 돕는다고 온갖 연장을 들고 넘어가서 몇시간째 내 울화통을 터트리며 기다리다 지쳐 온갖 도구를 팽겨친 채로 아이들이 마련한 엄마날 점심엘 부랴부랴 달려가서 변함없는 부부 금슬을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어머나 꽃바구니가 참 예쁘다며 올케와 나는 고상하게 웃음짓고, 며칠뒤에 오는 내 생일에도 잊지않고 시들지 않는 히야신스와 미니 장미화분을 보내주는 사위에게 해마다 잘 자란다고 우리집에 올 때마다 현관앞에서 보여주고 사진을 찍어보낸다. 역시 모든 물건엔 사용후기를 올려야 주는 이가 기뻐하고 계속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돈 쓸 때 많을텐데 뭘 이런걸 보내냐고 하지말고 주는 건 50년 동안은 무조건 받자고 동생네 부부랑 약속을 한 덕에 해마다 꽃과 맛있는 점심과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며 봄을 지낸다.
며칠뒤 바베큐 냄새를 풍기더니 양고기 꼬치구이를 5개 주는데 맛나게 먹으면서 그동안의 얄미움이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아마존에 들어가 옆집에도 호미 하나는 주어야지 하면서 역시 먹는데서 인심 난다더니 내가 이렇게 크게 아마존의 큰손이라 뽐낸다.
이제 오월이 끝날 때면 나는 무릎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고 또 다른 무릎을 수술을 해야하니 더 전투적으로 텃밭을 가꾸어놓고, 조기에 의자를 놓고 남편에게 밭일을 하도록 진두지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봄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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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