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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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할 자유, 추앙할 평화

2022-05-25 (수)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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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사회의 최고의 가치는 자유와 평화이다. 물론 그 주위에는 평등과 정의와 같은 다양한 윤리적 가치들이 둘러서 있다. 그런데도 자유와 평화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인류 최고의 삶의 가치이다. 미국 31대 후버 대통령은 “자유는 열린 창문과 같다. 그 창문으로 인간의 정신과 존엄성이 햇빛과 같이 들어온다”라고 했고, 패트릭 헨리는 “나에게 죽음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고 했다.

윈스턴 처칠은 “철면피의 악보다는 위선적인 평화가 낫다.”라고 했고, 자유와 평화보다 더 높고 위대한 정신적인 가치와 삶의 기준이 어디 있을까?
요즘 부쩍 자유에 대한 언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비단 이때만이 아니라 자유를 부르짖는 그 많은 사람, 인종과 국가를 떠나 그 많은 시간과 역사 가운데 억압된 자유를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하늘이 울리고, 땅이 통곡해야 했는가? 노예의 삶에서 자유,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범죄의 속박에서 도망, 경제적인 사슬에서 단절, 그리고 정치적인 압박에서 독립을 위해 우리의 많은 의식적이며 도전적이고 독립적인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자유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았고, 경제적인 빈곤에서 탈피하였고, 6.25 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승리했고, 독재정치로부터 자유 민주국가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자유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자유의 뜻이 달라지지 않으며, 또 자유가 정치적인 수단이나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안방에 들어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의 말이 맞듯이, 이 사람이 말하는 자유와 저 사람이 말하는 자유의 뜻이 다를 수 없다.


남자가 갖는 자유가 다르고, 여자가 갖는 자유가 다르고, 부자가 갖는 자유가 다르고, 가난한 자가 갖는 자유가 서로 다른 무지개 같은 것이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오직 하나이다. 그 자유는 어느 것들과 어느 사람으로부터 전혀 방해되지 않은 상태가 자유이다. 그래서 자유가 있는 곳에는 만족이 있고,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성된 자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귓가에 늘 들려오는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 가사를 보면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희망의 나라로”라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우리가 해야 할 자유와 행복의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할 많은 일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러기에 이미 우리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드러나지 않지만, 비밀리에 빼앗고 빼앗기는 자유를 더 찾기 위해 우리는 자유를 위해 달려가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으면 평화가 없고, 평화가 없으면 당연히 자유가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지역을 점령했기에 우크라이나는 동남부 지역을 왕래할 자유가 없어졌고, 그로 인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서로 향해서 원수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다. 행복은 어디 있을까? 인생의 삶의 가치는 풍요와 성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17:1)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을 위해 사는 것도 사람이 가져야 하는 높은 이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추구하고 추앙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평화이다. 평화는 그 어떤 것들과 그 어떤 사람들과 환경 때문에 거슬리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유를 추구할 뿐 안 아니라 평화를 추앙해야 한다. 평화를 높이고, 평화를 사모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 가장 높은 정신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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