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며 비평가인 존 드라이든은 “용감한 사람은 대중의 칭송을 구하지 아니하며 무력으로 압도 당하더라도 대의를 버리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용감한 사람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며 세상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신념을 지키며 당당하게 자기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지난 8일, 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간 김지하 시인은 ‘오적’, ‘타는 목마름’. ‘죽음의 굿판 당장 집어치워라’ 등으로 저항 시인을 넘어 생명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독재에 저항할 때 필명을 ‘지하'(地下)라고 했는데 이름처럼 사용되면서 이름을 지하(芝河)라고 한자만 바꿔서 평생 사용하였다. 본명은 김영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핍박한 정권에 반감을 가지고 평생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많은 사람들은 시대가 변하고 더 많은 사실이 알려져 재평가하는 것을 꺼린다.
김지하는 과거 군사정권에 맞서 ‘오적’을 발표한 후 박정희 군사 정권에 의해 투옥되었고 그 시를 발표한 사상계는 폐간이 되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구명운동을 하였고 후원자가 되었다. 연쇄 분신 자살이 이어지는 정국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발표하여 변절자로 낙인이 찍혔다.
변절이 아니라 생명사상에 심취 변화하는 용기인 것이었다. 소인배로서는 할 수 없고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도 시대에 따라서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김지하는 네티즌들로부터 맹공격을 당하던 작가 황석영에 대해 “시비 걸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작가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는 시각을 공개적으로 피력하였다.
같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 진보논객 진중권도 김지하를 몰아붙였고 과거 그의 구명운동을 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는 김지하를 제명하였다.
그러나 박근혜를 공개 지지하고 백낙청 교수를 비판하는 행보를 보인 소신이 돋보였다. 그의 깊은 시학적 심층을 바로 봐주어야 한다. 김지하 시인은 소속단체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기 주장이 분명한 시인이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이며 참여 시인이었던 김지하는 80년대에 기독교 사상과 불교의 미륵사상, 화엄사상, 유교, 선불교, 기(氣) 철학 등 여러가지 사상들과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재해석하고 이를 모두 융합 수용하여 생명사상을 제창했으며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많이 썼다.
김지하 시인이 조지 워싱턴 대학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그의 강연 내용에서 생명을 중시해야 하고 조국을 사랑하며 시인은 진리를 말 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강연은 깊이가 있었고 감옥 생활과 거친 세상 풍파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강연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시야를 넓혀 생명사상을 중시한 김지하를 시대의 영웅으로 평가해야 한다. 한번 반대하면 끝까지 반대하는 우를 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일제시대를 거쳐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의 시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누가 대한민국을 잘 살게 만들었으며 일류 국가가 되도록 사심없이 희생봉사를 했나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평가하는 데는 진보와 보수로 나눌 필요가 없다. 어떤 인물이 애국자였는지 알아볼 수가 있다.
진보세력의 김지하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아우러는 인물 김지하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인류를 사랑한 김지하로 존경받기를 바란다.
김지하 시인의 위대함은 체제에 저항하는 참여시인을 넘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위해 사상의 지평을 확대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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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웅/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