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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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38)

2022-05-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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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

미국 이민사회에는 ‘이민 와서 갖게 되는 직업은 대개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따라간다’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모든 이민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또 근래에 올수록 이런 확률이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오래전에 이민 온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얘기다. 왜 그럴까? 미국 이민 와서 갖게 되는 직업이 왜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따라가는 것일까?
이민…. 미국 땅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이민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가족, 친척, 친구 등 먼저 와서 살고 있는 누군가의 초청이나 권유가 있어서 미국 땅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라는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상태에서,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미국 이민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흔하지는 않다. 그러니 이민을 결심하고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마중 나온 사람이 그날 공항에 도착한 사람이 묵을 곳을 준비해 놓는다. 이민을 위해 낯선 땅에 도착한 첫날은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집에서 지내거나 당분간은 그 사람이 준비해둔 거처에서 지내게 된다. 안정된 거처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대개 그렇게 된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그런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다. 누군가를 마중하기 위해 그날의 생업을 팽개치고 공항에 나간다는 것은 어지간히 가깝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생활은 그래도 될 만큼 만만하지도 않고 그 정도로 한가한 이민자가 많지도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많은 한인이 미국 땅에 도착한 후 시차 적응되기도 전부터 일을 시작한다.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도대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도착한 지 며칠 안 된 사람이 무슨 수로 독립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낯선 땅, 귀에 선 언어 속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항에 마중 나온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하는 일을 옆에서 보면서 미국 직업세계를 접하게 된다. 미국 도착 후 처음 접하는 영역의 직업이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인 것이다. 마중 나온 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타고 가서 그의 옆에서 곁눈질로 견학하게 된다. 그러다 조금 지나서 경력이 쌓이면 도우미(helper)가 된다.
그 단계에 이르고 나면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것보다는 그동안 따라다니면서 조금이나마 해본 이 일,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이 일 즉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하는 그 일을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 또는 그 인근 직종을 계속 하게 되는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결국 먼저 미국에 도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다 보면 그 사람의 직업에 친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업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민 와서 갖게 되는 직업은 대개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것이다. 초청 이민의 경우에는 초청인은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인력을 초청하는 것이기에 도착한 사람은 더욱 자연스레 공항에 마중 나온 초청인의 직업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한 얘기는 본국에서 모든 절차를 밟아 영주권을 받고 출발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공항에 누가 마중을 나왔든 간에 그 영주권이 나온 목적에 맞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는 얘기는 예를 들면 아내 명의로 취업이민을 하는 경우 그 남편의 직업은 대개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사족 하나.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에 도착한 사람에게 1년간은 일 안 시키고 영어공부만 하게 한다는 얘기. 그런 얘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따로 신경 써서 확인해본 것이 아니기에 100% 신뢰할 수는 없다. 1년 동안 일도 안 하고 영어공부만 할 만한 그런 여력이 어찌 베트남 사람들에게만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다만 이 얘기는 이민 초기에 영어를 잘 습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미국땅 도착한 초기에 영어를 어느 정도 다잡아 놓지 않으면 남은 세월 동안 생활의 불편은 물론이고 직업 선택에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주위를 돌아보면 ‘그게 말이야… 영어가 안 돼서 말이야…’ ‘아, 그 망할 놈의 영어 때문에…’ ‘그놈의 영어만 아니면 콱 그냥…’ ‘영어가 나를 싫어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혹시 ‘만약 한 시간의 시간을 주면서 도끼 한 자루로 나무를 찍어 넘어뜨리라고 한다면, 처음 30분은 도끼날을 세우는데 쓰겠다’는 얘기를 들어보셨는지. 미루지 말고 이민 초기에 영어를 잘 습득해 둬야 할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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