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부터 노화가 시작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보톡스로 조금씩 관리를 해주면 늙어서도 주름 없는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은 둘째치고 내가 그 꽃다운 어린 나이에는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누구나 서울에 금송아지 한 마리쯤은 묶여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왕년의 나도 고급지고 빛나는 우윳빛 피부에 주근깨 하나, 뽀룩지 하나 나지 않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킨의 소유자였다.
그랬던 피부가 지금은… 최악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나 ‘조개 무늬' 같은 적나라한 비유의 말들을 듣고 있자니 정말 충격적이고 살맛이 나지 않는다. 나의 빗살 무늬 주름에는 이미 예견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웃음이 많고 눈으로 웃음을 짓는 편이라 눈가에 자잘하게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효리의 눈가 주름이 유명한데 내가 꼭 그렇다. 어떤 이는 그럼 눈으로 웃지 말고 입으로 웃으라고 말한다.
어찌 얼굴의 근육을 내 마음대로 일부로 움직이며 웃음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래. 도 시도는 해보았다. 거울을 보며 눈은 가만히 두고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어보고 아니면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내어 하하 웃는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리 웃을 일도 많지 않은데 그깟 주름이 뭐라고 광대도 아니고 가짜 웃음을 만들어 표정까지 가면을 쓰고 거짓 행동을 해야 한단 말인가? 에이 이것도 아니고 그럼 어쩐다.
집에 돌아다니는 화장품을 몽땅 모아보았다. 화장품을 세트로 사는 버릇으로 쓰고 남는 것들이 생기는 법! 버리지도 못하고 쌓아놓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얼굴이 끈적이는 것도 싫어해서 대충 조금만 바르는 버릇 또한 얼굴 땡김에 한몫했다 싶은 생각에 덕지덕지, 처벅처벅 발라보기로 했다. 손안에서 주르륵 흐르도록 많은 양을 바르고 스며들게 계속 두드려주니 과연 순간적으로 얼굴이 반지르르하니 빛이 나는 듯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그동안 너무 조금의 양을 바른 탓이었구나. 하지만 그다음 날 아침… 도루 아미타불!
바르는 그 순간에만 일시적으로 반짝 빛을 보고 다시 당기기 시작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 돈과 시간을 들여보자. 어렵게 마사지 예약을 잡았다. 두 시간을 할애할 만큼 피부 땡김이 절실하기에 그것도 황금 같은 일요일을 마사지에 투자했다. 온갖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투여하고, 고주파로 뜨겁게 얼굴을 이리저리 댕기고, 뜨거운 스팀으로 뜨듯하게 피부를 익게 만들었다. 마치 얇고 마른 귤껍질 위에 오일을 바르고, 문지르고, 댕기고 별짓을 다 했지만 결국은 껍질 위에만 정성을 다하면 무엇하랴 사막에 물만 살짝 뿌린다고 싹이 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아픈 듯 하얗고 핏기없는 얼굴빛을 선호했다. 번질거리는 아줌마의 얼굴을 극도로 혐오했고 번질거림을 개기름이라 비유해가며 번지르한 아저씨들을 비호감으로 몰았다. 연예인들도 티브이 화면에 개기름이 그대로 노출됨을 극도로 싫어해 파우더로 꾹꾹 누르고 나와야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번질거리다 못해 유분기가 줄줄 흐르는 듯해야 꿀 피부니 도자기 피부니 하며 그런 연예인을 선호하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K뷰티라는 말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남자들의 중년도 여자 못지않다. 한 번은 남편이 TV를 보다 한국의 대스타인 이병헌의 늙어버린 모습을 보며 “설마 내가 저렇게 늙진 않았지?” 라고 묻는데 ‘아니 이병헌처럼 대스타가 뭐 돈이 없겠어, 시간이 없겠어, 매일 별의별 좋다는 화장품이며 의술을 총동원해도 저 정도인데 당신이 무슨 수로 이병헌을 비교해…’ 입안에서만 맴돌았지 차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더니 “어? 내가 이렇게 늙었어? 진짜 이게 내 모습이야?” 오… 슬픈 현실이여!!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사진을 잘 찍지 않고 그리 외모에 신경을 안 써서인지 자신의 모습을 잘 모르는 듯하다. 대신 남편은, “아! 진짜 술 땡긴다.”라며 혼잣말을 진하게 남긴다. 남자는 자신의 주름을 보고 술이 땡긴다 한숨짓고, 여자는 매일 늘어나고 깊어가는 자신의 주름을 보며 얼굴 땡긴다 한숨짓는다.
아이들 미래에 대한 고뇌 찬 한숨과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지, 하는 회한의 한숨이 섞여 어느새 중년의 위기가 넘어가고 있다. 김창완의 언젠가 가겠지~ 라고 했던 청춘이라는 노래가 오늘따라 진하게 땡긴다. 언젠간 가겠지 라며 부르던 20대 청춘이 눈 깜짝할 사이에 푸르른 청춘이 그립게 되었고, 지고 또 지는 꽃잎을 잡으려 애써도 그 세월의 빈 손짓에 서글퍼지고,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할 수 있지만, 날 버리고 간 세월은 허전함에 몸서리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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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