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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행복이 사회의 행복

2022-05-15 (일) 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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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니의 날을 맞았다. 어른이 되었어도 어머니의 날엔 늘 어린이가 된다. 달력에 있는 각종 기념일들은 모두 나름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 어버이 날, 부부의 날, 어린이 날 등도 그러하다. 모두 가정의 소중함을 북돋우는 날들이다. 요즘 거대한 사회적 담론에 밀려 가정의 역할과 의미가 작아지고 가물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가정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요청된다.

가정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가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어, 가정을 정의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전통적 의미의 가정은 혈연에 기반을 둔 생활공동체로,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가족과 함께 희로애락의 삶을 누리며, 가족과의 이별 속에 삶의 끝을 맞이하는 장소였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성경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인류에게 만들어 주신 첫 공동체가 가정이라 말씀한다. 가정은 지금까지 인류를 이어오게 한 천륜적 존재방식이요, 사랑과 행복의 생활공동체다.

그러나 요즘 1인 가정이 늘어나, 고국의 경우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물론이고 한국도 무연고사(無緣故死)나 고독사(Death of No One)의 사례가 늘고 있다. 전통적 가정 공동체의 위기의 실상을 보여 준다. 가정 관련 통계는 사회에서 편부모 가정, 비혼인 생활공동체, 패치워크 가정(Patchwork family), 동성애 가정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비례하여 비혼주의 혹은 만혼의 경향도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가정 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사회학자들 사이에선 전통적 가정공동체의 소멸에 대한 우려나 전망이 이미 담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따뜻한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미움과 상처를 가져오는 고통의 가시둥지가 되기도 한다. 가족은 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의 행복을 위하여 미국에 왔으며, 낯선 미국에서의 어려움과 고된 일들을 가정을 위하여 혹은 가족의 이름으로 이겨냈을 것이다.‘추격자’라는 영화의 한 대목이다.

자신을 죽이려는 범인에게 한 여성이 살려 달라고 간절히 빌자 범인은, 네가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 그러자 여인은‘나에게는 딸이 있어요.’하며 절규한다. 가족은, 가정은 역경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며,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치열한 세상에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 가정은 갈등 미움 아픔 괴로움 상처의 장소요 서로 원수가 되는 자리가 된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가정을 살려야 한다. 가정을 살리는 일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 아니다. 가정 없는 사회는 없다. 가정 문제는 개인의 일이자 국가의 책무여야 한다.

가정은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이며, 종교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정의 행복 없이는 개인의 행복이 없으며, 가정의 행복 없이는 사회의 행복도 없다. 개인의 행복, 가정의 행복, 사회의 행복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서로 나뉘어 질수 없음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며, 하느님의 뜻이다. 요즘 한국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이야기가 나온다. 섣부른 결정으로 심히 우려 된다. 가정, 가족 문제가 결코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 가정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

가정을 살리는 길은 다시 혈연을 강조하고, 전통가치인 효제(孝悌)를 부르짖는 데 있지 않다.‘가족 같은 남, 남같은 가족’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나 부모와 자녀라는 혈연적 관계 그 자체가 저절로 가정을 지켜주지 못하며, 비록 남일지라도 가족 이상의 정서적 친밀감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가정다움이 있어야 한다. 가족 구성원 상호간에 마음을 열어 들어줌, 위로, 받듬, 아낌, 양보, 격려, 타이름, 존중, 희생, 기도 그리고 사랑으로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며 삶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함께 노력하고 기도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 나와 온 가족 모두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며, 적어도 한 가정만큼이라도 더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가는 ‘한 작고 조용한 혁명가’의 길이 아닐까 한다.

<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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