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줄서기와 선긋기

2022-04-27 (수)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크게 작게
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줄을 서는 것이다. 버스를 탈때에도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줄을 서야 하고, 주유소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유치원에서 처음 배우는 것도 줄 서는 것을 배우게 된다.
유치원에서 공부할 때에는 제일 먼저 색연필로 줄 긋는 법, 선을 연결하는 것을 배운다. 가나다를 배우기 전에 선과 줄을 배운다. 선과 줄을 배우면서 자연을 그리기도 하고, 사람을 그리기도 한다. 이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학습이라고 해야 한다.
줄을 서고 선을 긋는 것은 사람사는 도리이고, 인간관계의 원리이기도 하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줄서기와 선긋기를 잘해야 한다. 나에게 유익한 쪽이라면 줄을 잘서야 하고 유익하지 않다면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줄을 서는 것과 선을 긋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줄과 선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는데 이 관계는 옷감의 씨위와 날위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있어 한 사회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단면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관계를 잘하는 사람은 일면 발이 넓어 마당발이니 오리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회생활이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답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춥고 따뜻하듯이 그래야 한다.

어떤 의도와 목적이 삽입되면 줄과 선은 어느새 담이 되고 벽이 되고 만다. 벽이 생기고 담이 생기면 생길수록 사람 사는 곳은 자연이 아니라 인공이 되고 인공이 발전되어 기계가 되는 비극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은 마치 여름 가뭄 후에 장맛비가 쏟아져 논에 물꼬를 트듯이 이 사람에게는 열어주고 저 사람은 닫아야 하는 인간관계기술이 필요하다. 너무 열어서도 안 되고 또 너무 닫아서도 안 된다. 줄도 서야 할 때는 서야 하고 선도 그어야 할 때는 그어야 한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는 줄을 서고 그 사람과는 선을 긋는 것이 마치 수학의 답을 얻는 것처럼 정확하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슨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가슴이 아프고, 울화가 터지고, 마음이 섭섭한 일들이 많은 것은 다 줄을 잘못 서고 선긋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즈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게 되면 서로가 좋은 자리를 얻을까 기대하는 마음들이 컸었다.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직접 찾아가 개인 청탁을 하게 된다.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23:12)고 하시며 그 청탁을 거절하셨다.

설령 이 줄이든 저 줄이든 줄서야 하는 이유가 높은 마음이 아니라면 또한 이 선이든 저 선이든 가운데 선을 그어 통제하는 것이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면 큰 낭패는 없을 것이다.
요즘 줄서기 선긋기를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된다. 혹시라도 설령 의도적인 줄서기나 계획적인 줄긋기라면 결국 나중에는 수습해야 할 더 큰 일이 생길 것이다. 지나친 줄서기 날카로운 선긋기가 모두에게 유익이 될지언정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