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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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깜빡이가 한국의 매너라면, 미국에선?

2022-04-18 (월)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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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을 타다가 강남으로 빠지는 길목을 놓치기 직전, 오른쪽 끝 차선으로 진입하기 위해 시도하다 어떤 친절한 분의 양보를 받고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비상 깜빡이를 몇 번 켜주었다. 한국에 자주 나가는 편이라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의 거리가 익숙하다. 그렇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지형이 바뀌는 도시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도로의 변화에 분명 아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쉬이 놓쳐버리는 도로 사정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한국에선 운전대를 잡자마자 아니다, 잡기 전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거의 전투태세로 운전대를 양손으로 힘주어 잡고 오른쪽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누가 내 앞을 낄세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어느 쪽 차선이 더 빨리 움직이는지, 행여나 내 차선이 양쪽 차선에 밀려나지나 않는지, 중간에 껴야 하는지 아니면 끝까지 가서 눈치를 보며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건지, 교통정보에 귀를 잔뜩 기울이며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동시에 보며 행여 내가 보지 못하는 차가 속도를 내서 달려오고 있는지, 잠깐 방심으로 내 앞차에 누군가 끼어들어 내가 밀려 버리면 뒤차에 욕을 잔뜩 먹을까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렇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운전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10여년 운전을 해서인지 기본적인 운전자의 자세는 이런 모양새가 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미국에 와서도 한동안 습관적으로 운전대만 잡으면 마음이 급해지고 출발하면서부터 도착지까지 마음의 여유는커녕 긴장의 연속으로 운전을 해야만 했었다.
처음으로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 건 내가 차 안에서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걸 인식할 때부터였다. 음악을 들으며 바깥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를 부리다 옆 차가 들어온다는 사인을 하면 주저 없이 속도를 줄이고 차간 거리를 넓혀준다.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특별히 미안함을 전할 이유도, 감사를 받을 이유도 없는 데가 바로 이곳이다.


여기에선 왜 그런 여유가 있는 걸까? 물론 한국은 도시가 작고 인구는 많아 복잡하다는 이유가 당연하지만, 한국은 뭐든 빠르게 움직이고 그 빠름을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것에 적응이 되어있는 DNA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지구상 최초의 나라가 노력 없이 될 수 없는 일이고 이는 누가 강제로 시킨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에 비해 미국의 국민성은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규칙에 맞추어 국민은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라 하나의 규칙을 바꾸고 시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느린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을 수 있고, 좋음을 나에게 적용되게 배우고 실천해서 내 것으로 빠르게 만든다. 또한, 그러한 일이 나만 좋아서도 안 된다. 내 가족도 좋아야 하고 내 친구도 좋아야 하고 모든 이가 좋아야 하는 패밀리 근성이 있다. 그래서 말에서도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익숙하다. 절대 나만 좋은 일을 나만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뒷말을 듣기 딱 좋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왜 너만!!!
그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운전자는 누구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의 비상 깜빡이를 반드시 해야 한다. 고마움의 강도에 따라 깜빡이의 숫자도 달라진다. 한국 사람의 위트는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도 빛이 난다. 누가, 언제, 처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 양쪽에서 한두 번 깜박이는 비상등이 뒤차에서 보면 운전자가 두 눈을 깜박이는 듯한 모습이라 절로 웃음 지어진다는 걸 그 누군가는 알고 한 행동이었을까?

누구는 차 틴팅으로 수신호가 되지 않게 됨으로써 비상등 신호가 생겼다고 하는데 어찌 되었든 다른 나라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누구든 생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 국민 전체로 유행처럼 번져 문화로 장착되기까지는 말 없는 소리가 공감대로 연대 되어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할 일인데 한국처럼 공동으로 일사불란한 정신을 가진 나라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미국은 지금도 한국의 옛날 모습처럼 고마움을 표시한다. 정겹게 손을 가볍게 들어준다든지 급하면 창문을 내리고 손으로 끼어 들어가는 표시를 한다던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거나 정말 고마우면 창문을 내리고 큰소리로 땡큐를 말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비상등으로 깜빡이를 켜며 애교로 봐주는 희한한 행동을 본 적도 없지만 내 앞차가 이런 행동을 나에게 한다 해도 나 또한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일이다.

차의 언어가 방향이나 지시등이 아닌 위트 넘치는 감사의 사인으로 승화한 한국의 놀라운 교통 문화가 다시 한번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는 독특하고 창의적으로 세계를 이끄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비상등 깜빡이가 이곳에서도 널리 알려져 모두가 차로 ‘눈인사’하는 그런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래본다.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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