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성시는 ‘일곱 걸음에 시를 짓는다’는 뜻으로 조조(曹操)의 아들인 위(魏) 문제(文帝) 조비(曺丕)와 그의 동생 조식(曺植)의 일화에서 비롯하였다. 글솜씨가 뛰어난 동생을 시기하고 견제한 형 조비는 그가 반역을 꾀한다는 보고를 받고 차마 죽일 수도, 용서 할 수도 없어 그에게 일곱 걸음을 걸으며 자신과 조식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시를 짓게 하였다.
그때 조식이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콩 줄기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솥 안의 콩이 울고 있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본래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시오)’라는 시를 일곱 걸음 만에 지었다.
조식은 한 핏줄인 자신을 핍박하는 형을 콩과 콩 줄기로 비유한 것이다. 이 시를 듣고 조비는 결국 동생 조식을 죽이지는 않고 변방으로 추방하였다. 이처럼 시(詩)는 고래(古來)로 사람의 정서(情緖)를 압축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감동과 의미를 전달해 왔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말기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김삿갓(김병연)에 관한 수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 하나를 소개해 본다. 김삿갓이 금강산 탐방을 위해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마침 그 마을의 김참봉이라는 부자집에서 환갑 잔치가 열려 김삿갓이 술과 밥을 얻어먹으려고 찾아갔는데 잔치에 와있던 양반 손님들은 분위기 망친다며 허름한 옷차림의 그를 박대하였다. 화가 난 김삿갓은 주인과 객(客)을 비꼬는 시를 한 수 갈겨 쓰고 그 집을 나왔는데 그 시가 또한 걸작이라, 이 시를 읽은 김참봉이 달려 나와 그를 붙잡고 잔칫상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임을 알고는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마침 일곱 명의 아들이 환갑을 맞은 부친을 위해 그에게 시를 한 수 써달라고 간청하였던바 김삿갓은 흔쾌히 승낙하고 붓을 들어 첫 구를 다음과 같이 썼다.
‘彼座老人不似人 (피좌노인불사인/저기 앉은 저 노인, 사람 같지 않구나)’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잔치의 주인공을 모욕하는 구절이라며 분개하였지만 그가 태연하게 ‘疑是天上降神仙 (의시천상강신선/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구나)’라는 다음 구절을 쓰자 좌중은 감탄하며 환호하였고 그 다음은 구절은 어떤 내용일까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膝下七子 皆爲盜(슬하칠자개위도/슬하의 일곱 아들 모두 도둑놈이구나)’라고 쓰자 아들들은 자신을 도둑에 비유하였다며 아연(啞然)하였으나 아직 마지막 구절이 남아 있기에 그에게 제발 잘 부탁한다며 서로 귀한 술을 권하였다.
그러자 김삿갓이 큰 기침을 한번 하고는 마지막 시귀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偸得天桃獻壽宴 (투득천도헌수연/하늘에서 복숭아를 훔쳐다가 수연(환갑잔치)을 올리는구나)’라고 쓰니 바로 조금 전 ‘도둑놈’으로 불렸던 아들들이 마지막 구절에서 ‘먹으면 2천년을 산다는 하늘나라 복숭아를 따온 만고(萬古)의 효자’로 순식간에 둔갑하게 되었다.
좌중의 탄성과 환호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김삿갓이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곱 걸음만에 형의 심금을 울린 시를 쓴 조식도 대단하지만 재치 있는 시를 즉석에서 써서 듣는 이의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한 김삿갓이야말로 진정한 천재 시인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출전: 정비석(鄭飛石), 소설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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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