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나의 남편
2022-04-12 (화)
최숙자 / 비엔나, VA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본인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하기에 앞서 부모의 학벌과 재산 등을 따져 금수저 또는 흙수저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남편의 부모님은 경기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국민학교 문턱에도 못 들어가신 분들이니 흙수저 중의 흙수저이다. 보수적인 시아버님은 큰 딸 역시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지만 아들 세 명과 막내딸은 교육을 위해 서울로 보내셨다. 그들은 서울의 신촌역 근방에서 자취하며 온갖 고생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 일류 대학을 졸업했고 좋은 직장을 갖게 돼 시부모님의 희망과 자랑이 되었다.
미국에 먼저 오신 친정어머니는 나를 미국에 데려오는데 온 마음을 쓰고 계셨는데, 어려운 가정 출신의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내 편지를 받고 반대하는 답장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친척과 친지를 통해서 내 마음을 바꾸시려고 오랫동안 애를 쓰셨다. 그러나 결국 내 웨딩드레스를 손수 만들어 주시면서 결혼을 허락해 주셨다.
어머니가 염려하신 것 같이 남편은 목적을 향해 돌진을 하는 반면 나는 목적을 향해 천천히 가면서 삶의 여행을 즐기는 성격이니 결혼 생활은 당연히 힘들었다. 그 덕분에 겨자씨 보다도 믿음이 적었던 나는 ‘조건 없는 사랑’과 ‘믿음의 용사’가 되었고 그 믿음 속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세상의 흙수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가르치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 보시기에 흐뭇한 금수저로 열심히 살고 있다.
남편은 오랫동안 노력한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후진국을 도와주는 미국 연방정부 국제개발청(AID)에서 경제학자로 36년간 일을 하고 얼마 전에 은퇴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항상 밖으로 향하고 있어서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시민연맹, 우리민족서로돕기, 한미연합 등 여러 한인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지금도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과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로 보람을 느끼며 바쁘게 살고 있다.
얼마 전 버지니아 비치에서 사는 지인이 부인과 딸과 함께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 분은 남편이 1984년 미국정부 공무원으로 처음 아프리카에 출장을 갔다가 호텔에서 만난 분이다. 그 당시 수단의 수도 하르툼(Khartoum)에는 미국 대사관과 AID 건물, 사택을 관리하는 한국인 등 30여명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러 왔다가 우연히 남편을 만난 책임감 있고 똑똑한 분이었다. 한국 분들이 더운 아프리카에서 고생을 하는 것을 안타까워 남편은 미국에 돌아와서 그 분과 또 다른 한분이 미국에 올 수 있도록 이민수속을 도와주었다.
그분은 성실하게 살면서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해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큰 딸은 박사학위를, 둘째 딸은 석사학위를 받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좋은 사위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며 청첩장을 주러 오셨다. 거의 40년 전에 도움을 받은 그 분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시곤 한다. 그날도 남편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셨다.
그 분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금수저보다, 어려움을 경험하고 극복하며 어려운 이의 마음을 알고 서로 도와주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진짜 금수저라는 생각이 든다.
<최숙자 / 비엔나,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