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발표 (1965년 5월 18일, 백악관)
‘자식에게 땔나무(薪)를 해 오는 법을 가르치다’라는 뜻의 이 말은 당(唐)나라의 임신사(林愼思)라는 학자가 쓴 <속맹자(續孟子)>의 송신편(宋臣篇)에서 유래한다.
맹자(孟子)가 송신에게 송나라의 왕은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묻자 그는 ‘흉년이 들면 왕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먹이고 추위에 떨면 비단을 풀어준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춘추시대 (기원전 770-403년) 노(魯)나라에 살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노나라 사람은 아들에게 ‘백리(百里) 떨어진 남산(南山)에도 나무가 있고 백보(百步) 떨어진 가까운 우리 집 과원(果園)에도 땔나무가 있는데 어디에 가서 땔감을 구해오겠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가까운 과원으로 가겠다고 하자 그는 ‘가까워서 쉽다고 생각하여 나무를 하면 안 되고, 멀어서 어렵다고 생각하여 나무를 안 하면 안 된다. 가까운 곳은 우리 소유의 땔감이지만 먼 곳은 모든 사람의 땔감이다. 우리 집의 땔감은 다른 사람이 감히 해 가지 못하기 때문에 먼 곳의 땔감이 떨어져도 우리 땔감은 남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기적인 면도 있지만, 그 당시의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땔감을 오랫동안 쓸 수 있도록 확보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으로 무슨 일을 하든 당장에 도움이 되는 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보고 일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쳐준 것이다.
후한(後漢) 시대 반고(班固)라는 역사가가 쓴 한서(漢書)에 ‘황금이 가득해도 자식에게 경서(經書) 한 권을 가르침만 못하고, 천금(千金)을 물려준다 해도 자식에게 한가지 재주를 가르침만 못하다’라는 말, 그리고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탈무드의 교훈도 교자채신과 같은 뜻이다.
교자채신의 원리가 적용된 국가 차원의 예도 있다. 1965년 5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존슨 미 대통령은 한국의 월남전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에 무엇인가 선물하고 싶다는 뜻을 박대통령에게 전했다. 그 당시 한국은 경제건설을 위하여 미국의 경제지원이 당장 필요할 때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선진 과학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가 없으니 좋은 연구소를 하나 지어주시오’라고 대답하였다.
그 결과 미국 바텔연구소를 모델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미국의 지원으로 1966년 설립되었고 박 대통령은 한국과 전 세계의 우수한 한인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과학기술 입국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轉期)를 마련하였다.
박 대통령은 그 전에 독일, 미국 등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깨달았으며 산업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과학기술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국이 성취한 경제적 성공은 온 국민의 피땀어린 성실한 노력과 함께 50여 년 전 이미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국민이 잘살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 연구개발에 기반을 둔 산업의 육성(育成)만이 해답이라는 한 지도자의 혜안(慧眼,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교자채신(敎子採薪)의 교훈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대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