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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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의 호롱불

2022-04-05 (화) 이혜란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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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자동차가 없던 시절, 한 장님이 가까운 마을에 다음날 아침에 있을 어른의 환갑에 가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 채비를 하고 있는 장님에게 가까이 사는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잘 다녀오라고 말한 후에 호롱불 하나를 장님에게 건네주었다.
“아니 자네는 내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라서 지팡이 하나면 충분한 걸 알면서, 나를 놀리는 것인가?”
그랬더니 친구는 “이 호롱불은 자네를 위한 것이 아니고 어둠 속에서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자네를 보지 못하여 부딪치면 혹시 자네가 다칠까 걱정이 되어 주는 것이라네.”
그제야 장님은 친구의 깊은 배려에 감사하며 호롱불을 들고 어두운 밤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장님은 다른 쪽에서 오고 있던 한 남자와 부딪쳤다. “아니 여보세요.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호롱불을 보지 못했소.” 하면서 들고 있던 호롱불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장님이 화가 난 듯 소리를 지르니 남자는 잠시 기다렸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아저씨 눈이 안보이시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호롱불이 꺼진 것을 모르고 계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면서 불을 다시 붙여 주고 가던 길을 떠났다.
우리는 살아가며 매사를 너무 확신하면 가끔 실수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이 경우 상대편에서 오고 있던 사람 역시 선량하여 꺼진 호롱불에 불까지 켜서 주고 가는 인정에 또 감사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염력이 강한 델타변이 바이러스와 오미크론 변이가 인간을 겁먹게 한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돌파 감염에 사람들은 몸서리쳤다. 지금 우리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더듬거리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며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생명선을 잡고 어둠 속을 겨우 헤쳐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조금씩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우리에게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호롱불을 켜고 함께 불을 밝혀 주는 것이다.

<이혜란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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