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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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겨울

2022-04-05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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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한국 대선이 끝난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가지만 패배한 이재명 후보에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 가운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0.73%라는 사상 가장 적은 표차로 승패가 엇갈렸기에 이들의 상심이 더욱 큰 것 같다. 선거가 끝난 후 아예 뉴스를 끊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넓게 보면 진영으로 완전히 양분된 정치를 이런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겠지만 좁혀 본다면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거부감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한 분석이다. 이들은 이재명이 떨어져서라기보다 윤석열이 당선된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지난 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밝힌 응답자 비율은 62%에 달했다).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불경은 인간의 여덟 가지 고통을 설명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이 아니라 미운 사람과 만나는 고통, 즉 원증회고(怨憎會苦)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 뉴스 외면과 거부는 ‘원증회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라 보면 된다.


어쨌든 대선은 끝났고 국민들의 선택은 이뤄졌다. 그런 만큼 진보가 마냥 패배의 고통과 아쉬움, 그리고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 민주당과 진보는 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는지에 대한 처절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5년 후를 기약하기 위한 로드맵을 정교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당장의 정치적 결과만을 위해 서두른다면 패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진보는 이번 대선 패배로 겨울 혹한기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당장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2년 후 총선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 전반적인 투표율은 대선보다 크게 낮아질 것이 확실한 반면 노년층 투표율은 여전히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선거를 지배할 경우 민주당과 진보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 가능성이 크다. 보수를 선택한 국민 탓만 하고 자기반성은 게을리 한다면 진보의 겨울은 더욱 길어지게 될 것이다.

진보가 지난 5년 동안 간과한 것은 국정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말하는 정치행위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의 선한 의도만을 내세웠을 뿐 부동산 등 민생 문제에서 해결능력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여전히 40%가 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50% 넘게 표출됐던 ‘정권교체론’은 그만큼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치를 선의가 아닌 결과의 행위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정치학자 일레인 카마르크의 지적처럼 “인격적으로 훌륭하거나 국민들과의 소통에 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행능력이 뛰어나야만 좋은 대통령”인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도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다 진보가 보인 ‘내로남불’ 식의 오만은 많은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됐다. 조국 사태 같은 도덕적 윤리적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 터질 때마다 “그래도 우리가 보수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식의 강변으로 일관한 태도는 국민들의 거부감을 자극했으며 결과적으로 윤석열이라는 ‘어쩌다 대통령’을 키워준 토양이 됐다.

진보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비록 패하기는 했어도 이재명은 진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에 필요한 리더십의 유형을 보여줬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그동안 진보 정권들은 지나치게 이념과 가치에 집착하는 국정 운영 스타일을 고집해 왔다. ‘절대 반지’와 같은 가치를 설정해 놓은 후 이에 맞춰 정책을 만드는 국정운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스타일은 융통성이 결여되기 십상이고 실제로 목적지로 이끌어가는 실행능력을 보여주기 힘들다.

반면 이재명은 철저한 과제지향형 정치인이다. 그는 10여년 정치생활 내내 가치가 아닌 과제를 중심으로 해법을 찾아가는 귀납적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 진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정치 유형이다. 만약 이재명이 당선됐더라면 ‘유능한 진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좋은 정치는 관념적 구호와 선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국정을 이끌어 가려면 정확한 상황인식을 토대로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고 이것을 영리하게 수행해내는 실천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국정담당자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이란 인물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진보에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정치적 미래와는 별개로 20대 대선이 진보에게 완전한 실패만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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