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 들고 달려온 격동의 40년 한인섭 전 VOA 국장의 취재파일⑱
김일성 선전 간판 앞에서 마이크를 든 필자.
1992년 4월 중순 필자는 에드워드 콘리(Edward Conley) 동경 지국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문을 받았다. “북한이 서방측 경제 전문가와 기자들을 라진 선봉 지역 경제특구에 초청할 예정인데 미국의 소리 우리 두 사람도 포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일사천리로 북한 출장준비를 끝낸 두 사람은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AP통신, NBC 방송 등 15명의 미국 기자들과 한국, 미국, 일본의 기업인들을 포함한 약 150명 북한방문단의 일원으로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방문단에 한국 기자들은 초청되지 않았다.
필자는 북한을 다녀와서 6월13일부터 매주 토요일 여덟 차례에 걸쳐 특집 시리즈 “두만강에도 봄은 오는가?”를 제작하여 방송했다. 그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를 두 번에 나누어 소개한다.
#순안공항에 마중나온 미국의소리 애청자들
소위 ‘안내원’에 배정된 여러 명이 공항 청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 젊은 몇 사람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미국의 소리 한 아무개 아니냐? ‘소리방송’을 잘 듣고 있다”고 인사를 해서 당황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미국’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소리 방송’이라고 부른다. 그 별명은 작년 (1991년) 유엔총회 때 북한관리들이 귀 띰을 해서 이미 알았는데 이번에 북한에 와서 확인한 셈이다.
북한사람들이 평양에서 미국의 소리 방송을 애청한다는 말을 쉬쉬 하면서 몰래 얘기 하는 게 아니라 공공연하게 밝혀서 놀랐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방송 애청자들에게 둘러싸이다 보니 필자를 짓누르고 있던 불안감과 긴장감은 곧 안도감과 친숙감으로 바뀌었다. 그 중에 한 청년은 이듬해에 평양에서 우편으로 연하장을 워싱턴 미국의 소리 필자 앞으로 보내왔다.
# 고려호텔 객실에 놓인 자동전화기로 워싱턴과 통화
고려호텔 객실 탁자 위에 전화기가 두 대 놓여 있었는데 그 중 터치 톤 (touch-tone)으로 돼 있는 전화기에는 영어로 ‘International’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가르쳐준 대로 99번과 1번을 누르고 미국의 지역번호와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즉각 벨이 가면서 우리 직원이 받는다. 어찌나 신기 하고 반가웠던지.
1년 전에 워싱턴 미국의 소리 방송국을 방문했던 북한 외무성 산하 군축평화연구소의 한성렬 연구원이 “조선(북한)에서는 미국에 전화를 걸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조선에 전화를 걸 수 없다”고 불평하던 생각이 났다(지금은 워싱턴에서도 평양에 자동 다이얼로 전화를 걸 수 있다).
# 서방측 기자들의 빈축을 산 집단체조
우리가 안내된 김일성 경기장에는 10만 명 학생들이 참가하는 매스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4월15일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을 맞아 평양에는 80돌 축제가 계속되었는데 인민군 창설 60돌이 겹쳐서 그 열기는 대단했다.
우리가 앉은 맞은편 스탠드- 북한에서는 ‘배경대’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수만 명 학생들이 오색찬란한 여러 가지 ‘카드 섹션’을 벌였다.
학생들은 이 매스 게임을 위해 여러 달 동안 수업도 중지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창출해낸 결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컴퓨터 화 바로 그것이었다. 외국 기자들은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왜 이런 데에 시간과 정력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
한인섭 / 전 VOA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