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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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위의 나의 무대

2022-03-29 (화) 이지현 /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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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연예인들은 그들만의 인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더 높은 인기를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어쩌다 단독으로 이끌어가는 리사이틀이라고 하는 무대를 펼친다. 열광하는 많은 관중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에 취해 구슬땀을 흘려도 지칠 줄 모른다.
그들처럼 나도 무대를 만들어본다. 상쾌하고 신명나는 무대. 매일처럼 걷는 나만의 산책길을 유일한 나의 독무대라 지칭하여 일컫는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없어도, 열광하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는 없지만 나는 언제나 흥겹고 저절로 어깨춤이 추어진다.

독무대에 우뚝 선 나의 관중은 겨울의 침묵을 깨고 새봄에 무거운 흙더미를 세게 이리저리 밀치고 솟아나는 어린 새싹들이다. 질경이, 냉이, 달래, 소리쟁이, 쑥, 못된 시어머니가 며느리 미워하듯 인간들이 미워해도 미워해도 방긋 웃고 나오는 민들레, 작가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 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싱아, 그리고 이름 모를 잡다한 연록색의 풀잎들! 또한 어느 화가의 작업실에 펼쳐놓은 물감 색보다 더 선명하고 밝은 분홍, 연분홍, 노랑, 연보라, 흰색, 자주색 등등 많은 꽃잎들이 살짝 지나치는 짖궂은 바람결에 몸을 흔들며 무대 위에 선 나를 반긴다. 내 무대 위에 꽉 찬 관객들이다
리사이틀 여는 유명한 가수 곁에는 몸동작이 유연한 무용수들이 멋진 율동으로 무대 분위기를 한껏 높여 주지만 내 독무대 위의 무용수는 특이한 무용수들이다. 종종 걸음으로 바삐 다니는 빨간 깃털과 각 부위마다 색이 틀린 새들 가족이다. 조잘거리며 엎드려 꽁지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날개도 퍼덕이며 주둥이로 콕콕 찍어대다 머리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우리 인간들은 조잘거리는 소리를 울음소리라 하지만 그 새들은 특이한 저마다의 대화로 주인공인 나를 환호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묵직한 무용수, 진회색의 우아한 꼬리털을 흔들며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다람쥐 가족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보이는 귀여운 토끼들은 무대의 구경거리를 보면서 봄 내음을 많이 맡으려는지 코끝을 많이 벌름거린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독무대 위의 리사이틀에 음향, 효과를 더해주는 덕으로 나의 존재감은 더없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무대 위에서 너무 기분 좋아 엉덩이춤을 더 신명나게 추고 양팔을 벌려 나비춤도 추고 더러는 빙그르 돌며 아리랑에 노들강변 등 흐드러지는 춤을 추고 나면 나를 열광하는 이 봄에 작은 생명체들은 환한 미소로 나에게 힘을 보태준다.
키 큰 나무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은 나를 비추어주는 둘도 없는 서치라이트가 되어 잘 보이게 해준다.

무대 위의 천정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다. 그 천장 위로 커다란 새들이 힘차게 높이 날아간다. 황홀감에 고개를 마음껏 뒤로 제치고 나는 도취되어간다. 아!
유명 연예인들은 리사이틀할 때 그 무대도 등급별로 값을 치러야하며 부수적인 지출이 또 따르겠지. 그러나 나는 렌트비도 없고 무한대의 공간이 공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스탭진들이 다 일류 중에 일류이지만 그냥 프리(free)다.
봄이 아장아장 걸어가는 삼월의 길목에서 신나는 독무대는 펼쳐지고 나는 여름을 향해 손짓한다. 그리고 속삭이며 염원한다. 여름아! 평화를 가져오렴. 그래줄 수 있지….

<이지현 /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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