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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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30)

2022-03-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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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콘택트(eye contact) 이야기

학교 일진이 나오는 영화에서 자주 듣게 되는 대사가 있다. “깔아. 안 깔아?” 일진이 선량한 학생을 괴롭힐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에서 생략된 것은 ‘눈’이다. 즉 ‘눈을 깔아’라는 말이다. 시선을 마주하지 말고 밑으로 내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시선을 아래쪽에 두게 하는 것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는 것임에 동시에 상대방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진들은 항상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사실 일진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니고 일상생활에서도 힘을 가진 자에게는 항상 눈을 깔았다. 그 힘을 가진 자가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선배일 수도 있고, 실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 힘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상관없이 힘 앞에서 눈을 아래로 깔 것을 강요를 받아왔다.

만약 눈을 밑으로 깔지 않고 마주 쳐다본다면 그것은 저항 또는 반항으로 간주되었다. 힘 있는 자가 말을 하거나 꾸중을 할 때 눈을 밑으로 깔지 않고 눈을 마주친다면 “어딜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라는 소리를 추가로 듣게 되며 더욱 가혹한 힘의 행사를 경험하게 된다.
학생 시절을 되돌아보면 선생님과 눈을 마주하면서 얘기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다. 누군가가 선생님의 넥타이 부근에 시선을 둘 것을 권유했고 괜찮은 생각이다 싶어서 거기에 충실히 따랐다. 조금 시선을 올린다고 해봐야 인중 정도였다. 이런 것은 학교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다이어리’라는 이름의 회사 공식 노트가 지급되었기 때문에 상사가 하는 말을 거기에 받아 적느라 상사의 눈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대화할 때 반드시 상대방의 눈을 쳐다봐야 한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얘기하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눈을 마주치는 이 아이 콘택트(eye contact)는 대화의 기본 중 기본이며 필수 항목이다.
미국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국에서 막 도착한 학생을 대할 때면 많이 난감해 한다고 한다.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외톨이로 지내는 꼬마가 안쓰러워서 뭔가 다정하게 말을 걸면, 도대체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곳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미국 학교에서는 꾸지람을 들을 때에도 교사의 눈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만약 시선을 피하거나 딴 곳에 시선을 두면, 교사는 자기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교사는 자신을 무시한(무시하였다고 생각한) 그 학생 행동의 엄중한 처벌을 위해 그를 교장에게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꾸지람을 들을 때에도 눈을 똑바로 마주쳐야 하다니, 사실 우리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 교사는 우리 문화를 알기 전까지는 몹시 불쾌해 하고, 그리고 우리 문화를 알게 되면 놀란다. ‘아니 세상에, 눈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다니, 어떻게 그런…’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도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미국 도착 몇 년 후 미국 회사에 입사했다. 다인종이 근무하는 회사이지만 배치된 곳에는 모두 다섯 명의 한인이 있었다. 하는 일은 거의 막노동 수준인데 이 다섯 한인 중에 매니저나 수퍼바이저가 뭔가 설명을 하거나 어떤 지시를 할 때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듣는 것은 나 하나였다. 다른 한인은 바닥을 내려다보거나, 다른 한인을 바라보거나, 상사의 어깨너머나 가슴께에 시선을 두었다.

딴전을 피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영어가 원활하지 않은 데다 직장 상사와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때에는 수퍼바이저가 말하다 말고 ‘이봐 미스터 킴, 날 좀 보라고 이 사람들 한테 얘기 좀 해줘.’ 하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에서 사원이 과장님이나 부장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지시를 받거나 의견을 밝힌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딜 감히 사원 나부랭이가 과장님, 부장님 눈을 감히 마주 쳐다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 그 다섯 한인은 얼추 비슷한 나이였고 모두 그런 세월을 지낸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끼리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다섯 한인 중에서 나는 어떻게 미국인 직장상사의 눈을 마주 쳐다보면서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내 정수리가 그의 어깨에도 닿지 못할 정도로 키가 큰 미국인 직장상사와 눈을 마주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 그 망할 놈의 아이 콘택트(eye contact) 때문에 다 이해되지도 않는 영어 지시를 들으며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젖혀 직장상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정말이다. ‘이를 악물고’ 직장상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농담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이를 악물고’ 직장상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를 악물지 않으면 시선이 자꾸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첫 미국 직장에서 ‘이를 악물고’ 습득한 아이 콘택트, 그 후 미국 생활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얘기하는 한인을 어쩌다 만나게 되면 ‘미국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신경 써서 습득하지 않으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먼산 보면서 얘기하게 되는 것이 아이 콘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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