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향백리(酒香百里), 난향천리(蘭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이를 풀어쓰면 오히려 그 격이 떨어지는 듯 해서 조심스럽다.
술의 향기는 백리에 이르고,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르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까지 풍긴다. 친구와 함께 버지니아에서 한잔하고 백리길 볼티모어에 가면 될 일이요, D.C에서 비행기에 난화분을 하나 싣고 뉴욕에 내린다면 이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수만리 타국도 지척일 수가 있으니 서로 오가는 SNS상의 글 하나로도 사람의 향기가 전해질 것이니 오늘날에 더 그럴싸하다고 그냥 끄덕이고 지나가자.
나는 천성이 그런 지, 덜 깨어서 그런지, 철이 없어서 그런지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Gemeinschaft)적인 사고의 범주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세상은 이미 온통 AI, 컴퓨터등으로 저 만치 앞서 가고 있고 혈연, 향수, 우정, 신앙, 민족 같은 개념들은 이미 급격히 퇴보, 소멸되어 가는데도 세상의 물정에 동화되고 싶지 않은 앙탈인 듯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동사회단위 중에서는 맨 상위 개념인 ‘민족(民族)’에 대한 숙제와 숙명은 끝내 저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그게 비록 꿈일지라도 야무지게 하고 있다.
가냘프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애잔한 사명’ 쯤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같은 민족국가인 북한에 조상이나 친척 등 연고가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는 학문하는 축에도 못 끼지만 학문의 궁극적 목적과 삶의 지향점은 ‘생명’에 대한 외경, 탐구와 애착이 아닌가 한다.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그 어느 누군들 살생을 즐기며 전쟁을 하고 싶겠는가만 인류는 날마다 전쟁을 하고 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그것도 생뚱맞게 전혀 먼 나라끼리도 아니요, 바로 가족같은 이웃나라끼리니 더욱 이해난망이다. 지금 한창 사람을 서로 죽고 죽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내가 볼 때는 인류중에서는 가장 가까운 동족간이다.
살인이나 전쟁의 원인은 제 각각이다. 또 그 시작이 황당한 경우가 아주 많다. 살인과 달리 전쟁은 하루 아침에 느닷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전쟁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는 지극히 평화로울 때 서로 오가거나 주고받는 ‘사소한 발언’들이 그 단초가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소한 표현’들을 가지고 상대의 미래행동을 예측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21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말콤 그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쓴 최근의 베스트셀러 ‘타인의 해석(Talking to strangers)’에는 정치지도자들의 그저 ‘지나가는 말’정도였던 이런 사례들을 치밀하게 파고들어서 독자들이 알아듣게 잘 해설해 주고 있다. 왜 그 참혹한 1, 2차 세계대전같은 대참변이 일어났어야 했는지를….
어느 마을에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케익을 사서 퇴근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한쪽 다리를 잃고 집에 들어 앉게되자 아내는 그것이 자기때문이었지만 무능하게된 남편을 ‘절뚝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절뚝이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사를 해야했다. 새로운 곳에 가서는 아내가 남편을 ‘박사님’이라고 부르자 동네분들도 그녀를 ‘박사님 부인’이라고 불렀다.
배려는 한번 몸에 배이게 해놓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반면에 남을 깎아내리면 내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도리어 그 피해가 나에게 더 크게 되돌아온다.
왜냐하면 깎아내리는 그 말을 묵묵히 듣고있는 사람, 묵묵히 듣고 있는 걸 ‘수긍으로 착각’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결국 이 말이 당사자에게까지 전달되게 되는 ‘네거티브 전달체계’는 긍정적인 매신저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은 입증된 지 오래다.
남북이 서로 좋게 지내자는 말에 대한 화답을 미사일로만 응대하는 것을 우리 중에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력의 차이가 이제는 60:1이다. 외형만으로만 본다면 미식 축구선수와 초등학교 3학년만큼의 차이다.
그런데 그 작은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다. 총을 좋게 내려 놓자고 하자 송곳과 칼을 마구 던진다. 그러니까 유엔안보리는 2006년부터 그 집에 담장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칼을 던질 때마다 담장을 16번이나 더 높이 쳐 놓고 모든 외부를 차단하고 접근금지시키고 있다.
그리고 칼, 송곳을 던질 때면 숱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다 좋은데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말은 어떤 경우나 상황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총만 빼앗으면 널 가만두지 않을거야,’ 왜 저 사람이 저렇게 되었는가를 원점부터 다시 알아보는 것도 기본이다.
지금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경청’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필요를 알면 대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해 볼 것 다 해봐도 안되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것은 어디까지나 담장밖에서 우리끼리의 이야기일뿐이다. 그러니 송곳 날아오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강자의 너그러움이 평화를 담보해 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화 상대’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평화는 향기고, 통일도 향기이다. 개인간에도 국가간에도 더욱 더 조심조심, 평소에도 고른말 좋은말을 쓰도록 해야 할 것인즉, ‘언어(言語)’는 말 하는 것과 글쓰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둘 다 말씀 언(言), 말씀 어(語)다. 똑같은 말과 글인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향기가 다르다.
우크라이나의 400만 피난민과 나라가 전체가 망해가는 러시아의 현재는 피장파장 승자는 없고 뼈저린 상처뿐이다. 그래서 러시아 푸틴이나 우크라이나의 젤랜스키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전쟁 이전으로 되돌아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인향만리(人香萬里)의 세상이 얼마나 그립고 통회(痛悔)스럽겠는가! 그럴줄 알고 향기없는 그대들이 어쩌면 즐겨 읊었을 러시아 최고의 시인 푸쉬킨의 시를 두 사람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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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민주평통 위싱턴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