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묶어 은혜에 보답한다’라는 뜻의 이 아름다운 고사성어는 약 3000년 전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로 거슬러 가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진(晉)나라에 위주라는 대신(大臣)에게는 아름다운 애첩(愛妾)이 있었는데 그가 병석에 눕게 되자 아들 위과(魏顆)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녀를 재가(再嫁)시키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을 앞두고 그는 마음이 바뀌어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녀도 자기와 함께 순장(旬葬, 산채로 같이 묻음)하라는 유언을 다시 남겼다.
아들 위과는 부친의 서로 다른 유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부친의 애첩, 즉 그의 서모(庶母)를 다른 곳으로 개가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정신이 혼미한 순간 보다, 맑은 정신이었을 때 남긴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이웃 나라가 위과의 진(晉)나라를 침략했을 때 위과가 이끄는 군대가 공격에 몰려 위태롭게 되었다. 그런데 홀연히 어떤 노인이 나타나 곧 전투가 벌어지게 될 들판에 무성하게 자란 억센 풀들을 일일이 묶어서 매듭을 야무지게 만들어 놓고 사라졌다. 때마침 적국의 군대가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가 묶어 놓은 풀에 말들이 걸려 쓰러져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이를 틈타 위과의 군대는 적군을 공격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나는 당신이 시집보내준 여자의 아버지요. 그대가 부친의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주어 그 은혜에 보답한 것이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후 이 결초보은이라는 말이 생겨나 ‘은혜를 잊지 않고 죽어서도 갚는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각골난망(刻骨難忘), 즉 ‘은혜를 뼈에 새겨 잊지 않는다’라는 말도 거의 같은 뜻이지만 결초보은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실질적인 보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약간은 다르다. 평소에 호의를 베풀어 주었더니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우리는 주위에서 간혹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은 결초보은 고사(故事)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은혜에 관한 말로는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망은 물에 새겨라’,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되 그것을 마음에 두지 말라(施人愼勿念 시인신물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베푼 은혜가 있다면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나(人有恩我 不可忘 인유은아 불가망) 다른 사람이 나에게 원망받을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않고 있어서는 안 된다(怨則 不可不忘 원즉 불가불망)’라는 말들이 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런 좋은 말의 뜻을 잘 이해하면서도 가끔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사소한 잘못이나 오해로 자기에게 서운하게 대했을 때 과거의 좋았던 기억은 다 잊고 그 일 하나로 절연(絶緣)하거나 자신이 베푼 은혜를 잊었다고 서운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성인군자(聖人君子)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 마디를 실천하면 그 누구와도 등지고 살 일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결초보은 고사성어에도 ‘감사합니 (내 딸을 살려주어서)’, ‘미안합니다(자식으로서 당신 부친의 마지막 유언을 따르지 못하게 해서)’, ‘사랑합니다(그래서 당신이 적군을 물리치게 도와드려 은혜를 갚습니다)’ 라는 마음이 홀연히 꿈에 나타난 노인에게 있었다고 생각된다.
<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