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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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고 나면 보이는 것들

2022-03-05 (토) 정윤정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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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문득 지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첫번째는 건강이다. 어른들이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몸이 예전같이 않다”는 말을 하실 때 흘려들었는데, 어느덧 나도 새삼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20대에서 30대로 바뀔 때만 하더라도 체력 차이를 거의 못 느꼈었다. 오히려 30대에 막 접어들었을 때는 체력적인 여유에 마음의 여유까지 더해져 삶의 에너지가 넘쳤었다.

어느덧 몇 년이 흘러 40대를 목전에 둔 오늘의 나는 운동과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는 편인데도 체력 차이가 느껴지니 참으로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 하겠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한두 시간 단위로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보고 싶은 것들과 가고 싶은 곳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체력을 감안한 스케줄을 짜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금보다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약간 슬퍼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미루지 않고, 장기적인 체력관리에 더 힘쓰게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시간이다. 똑같이 주어진 일 24시간, 주 7일, 년 365일을 통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뤄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시간의 ‘양’보다 ‘밀도’가 높은 편이 많은 것 같다. 즉, 여유 시간까지 무리하게 줄이면서 생산적인 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할 때 똑같이 8시간을 앉아 있더라도 시간을 밀도 있게 쓴다는 뜻이다.

사실 나 자신도 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쓰는 편은 아니라서 늘 반성하곤 한다. 하루 종일 앉아 있긴 하는데 일에 집중도 못 하고 마음만 급해지는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런 날은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퍼뜩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뭐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그저 그렇게 흘려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단 한두 가지라도 내가 집중해서 배우거나 처리한 일이 있다면 내심 뿌듯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사람이다. 슬픈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오고 가는 인연에는 늘 끝이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 애인이나 배우자, 오랜 친구들, 나와 이 사람들과의 관계는 영원하지 못 하다. 세월이 흘러 소천하기도 하고, 인연과 사랑이 다해버려서 헤어지기도 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왕래가 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곁에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는 거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이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소중했던 사람이 떠나가고 “그때 좀 더 잘해줄 걸”, “그때 내 고집 부리지 말 걸”, “그때 좀 더 따듯하게 말해줄 걸” 하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걸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사람인지라 대부분의 상황에서 내 자신의 자존심, 감정, 편의 등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자꾸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문득 지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심한 황사나 큰 산불로 공기가 탁해지면 문득 파란 하늘이 예뻤구나 싶고, 코비드가 터지고 나니 문득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우크라니아 사람들이 자국을 지키려는 피, 땀, 눈물어린 노력을 보니, 우리 조상님들이 일궈낸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가 이렇게 소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길 바래 본다.

<정윤정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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