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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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나무에서 떨어지던 날

2022-01-22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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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쿵 소리와 함께 요란한 자동차 알람 소리가 들려온다. 금방 멈추겠거니 했는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밖으로 나가보니 방금 나간 아빠가 후진으로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에서 차를 빼다 우리 집 건너편에 스트리트 파킹 되어 있던이웃집 차를 보기 좋게 박아 버렸다. 아뿔싸!

난감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아빠는 그 잠깐 사이에 생각할 것이 많았다고 한다. 빨리 집에 갈 생각에 마침 떨어진 기름도 넣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잠시 한 눈 팔며 운전하다 후방을 보지 않고 그대로 나오다 이웃 차를 박았다고 설명했다. 우선 멀쩡하게 차에서 내리는 엄마, 아빠를 보니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놓고 나는 아빠한테 된소리부터 나간다. “어이구, 조심 좀 하지!” 후방 카메라도 있는데 왜 화면도 보지 않았냐고 핀잔을 준다. 조수석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엄마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다. 이미 난 사고를 어쩌겠는가. 이제 수습할 차례다.

이웃집 벨을 딩동 누른다. 이웃이 난처한 표정으로 나와 찌그러진 차 문짝을 이리저리 살핀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서로의 보험 정보를 나눴다. 서로 마주 보고 사는 이웃지간이라 원만히 처리했으면 했는데 다행히 말이 잘 통해 보험을 통하지 않고 잘 해결 볼 수 있었다.


과거 운전병 출신에 무사고 40년 차인 아빠는 이번 사고에 적잖이 타격을 받았나 보다. 본인이 이런 실수를 한 것이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아빠에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라며 앞으로 더 조심하면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연초부터 적잖은 돈이 깨졌다. 물가도 천정부지로 올랐겠다 새해에는 돈을 좀 아껴 쓰자고 다짐했는데 말이다. 생각지도못한 지출에 속이 좀 쓰렸지만 한편으로는 아빠가 점점 젊은 날의 총기를 잃고 늙고 쇠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 나이 들면 머리도 몸도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을 날이 와서 자그마한 실수에도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겠지. 그때에 내 딸이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가족 카톡방에 사고에 대한 합의가 잘 끝났음을 알렸다. 새해에 크게 액땜을 했으니 우리 모두 조심하자고 했다. 더불어큰 딸이 합의금 다 내주었으니 대신 손녀딸 매일 와서 산책 좀 시켜 주시라고 거래 아닌 거래를 했다. 말은 그렇게 해뒀지만 내일 아빠 오시면 아빠 좋아하는 파스타를 맛있게 해 드려야겠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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