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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5 (토)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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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연휴기간 동안 아내와 나는 부동산 에이전트와 DC 지역 여러 집들을 구경 다녔다. 여러 동네에 다양한 유형의 집들을 봤는데, 우리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아 살짝 지친 상태에서 새해 회사 업무도 다시 시작되어 우리 부부의 집 찾기는 잠시 소강상태이다.

우리는 아파트형 거주형태를 선호하는데, 큰 아파트들은 한국말로 아파트 관리비로 부르는 HOA가 보통 비싸고 많은 집주인들끼리 공통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HOA가 계속 오른다는 단점이 있고, 우리 예산으로 DC 안에서 단독주택을 사려면 조금 무서운 동네로 가야 하고, 단독주택을 여러 개의 유닛으로 나눈 건물들은 대부분 복도가 길고 창이 거의 없는 형태가 많다는 단점들이 보인다.

이렇게 집 주거 유형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워싱턴 포스트에서 최근에 읽은 집과 관련된 기사들이 매우 흥미롭게 읽고 생각하게 된 점이 있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70년대부터 당시 DC의 낙후된 지역에서 한 교회가 운영해온 임대아파트와 그 임차인들과 관련된 소송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지하에서 세 들어 살던 70세 노인이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하면서 집에서 나가길 거부하다 사망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포스터 하우스로 불리는 임대아파트는 70년대 DC 지역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집을 제공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시작되었으나, 아파트 운영에 전문성이 없는 교회가 제 때 아파트 보수를 못해 시설이 매우 낙후되었고, 이 사업을 후원하던 교회 또한 성도들이 줄면서 아파트 관리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이 아파트의 소유주인 교회에서는 부동산 개발업자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지금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임대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데, 현 거주자들은 지금까지 교회에서 거주환경이 악화되도록 방치했고, DC의 임대인 보호법을 지키지 않고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며 본인들을 쫓아 내려고 한다고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재개발로 인해 현재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거주하고 있는 임대인들이 갈 곳이 많지 않을 것에 소송을 통해 지금 아파트를 개선하고 계속 남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애초에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를 만들었고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유지하기 위한 교회 쪽 생각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반지하 집에 세 들어 살던 70세 노인 이야기는 더욱 안타깝다. 사망한 노인분은 당초 노숙생활을 하다가 DC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NGO 대표인 집주인이 딱한 노인의 사정을 듣고 호의로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지하 유닛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기사에는 정확한 임대계약기간이나 임대비용 등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건 집을 팔려고 하던 NGO 대표 입장에서는 선의로 집으로 들였던 사람 때문에 집을 못 팔게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우미 분과 함께 집에서 나가줄 것을 요청하러 갔다가 도우미 분과 노인의 대화가 물리적인 싸움으로 번져 노인은 사망했고, 현재 DC 검찰 측에서는 집주인과 도우미 분을 살인죄로 기소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두 이야기 다 서민들의 거주권을 위해 시작된 일인데, 지금은 양쪽의 대결 구도로 번지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호의가 도움을 받는 쪽이나 도움을 주는 쪽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못한다는 것, 집과 관련된 문제는 개인에게도 참 쉽지 않은 문제지만 사회적으로도 정말 풀기 어려운 영원한 숙제 같다.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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