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위로 쌓은 요새’ 푸르름 가득

2022-01-07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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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The Pinnacles ( 5,737’)

‘바위로 쌓은 요새’ 푸르름 가득
‘바위로 쌓은 요새’ 푸르름 가득

‘바위로 쌓은 요새’ 푸르름 가득

우리가 성인이 된 뒤에 익숙하고도 정이 든 고국을 나름대로의 결심으로 분연히 떠나온 뒤로 제2의 고향으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 남가주는 다행히도 많은 점에서 자랑스러운 요소가 많아 뿌듯한 긍지를 가질만한 천혜의 땅임이 분명하다.

등산을 즐기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이 실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산들이 부지기수라서 매번의 산행마다 항상 새로운 경이감을 느끼며 지내고 있으니, 언필칭 ‘요산요수’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은 해발고도 10,000’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여 가히 남가주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을 San Bernardino산군에 있는 ‘바위로 쌓은 요새’랄 수 있을 ‘The Pinnacles’를 찾아간다.


이 San Bernardino산악지역에는 높은 산들이 많은데, 산이 높으면 물이 깊다는 말을 증명하듯 큰 호수만해도 3개가 있다. 즉 Silverwood Lake, Lake Arrowhead, Big Bear Lake가 그 것들인데, 이 ‘The Pinnacles’는 중앙에 있는 Lake Arrowhead의 북서쪽 3마일 지점이면서, 1971년에 Cedar Springs Dam을 쌓아 시에라네바다산맥 등의 444마일 거리에서 끌어오는 California Aqueduct의 물을 저수하는 기능이 보태어진 Silverwood Lake의 동쪽 4마일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Big Bear Lake로 부터는 서쪽으로 15마일쯤 되는 위치에 있는데, 우리 한인 등산인들은 잘 찾아가지 않는 산인 듯 하다.

자동차를 타고 이 산을 찾아들어가는 과정에서 이 고산지역의 아름다운 지형과 푸르른 산세를 보는 것도 신선하고, 누군가가 바위를 소재로 하여 빚어낸 예술품들의 전시장이 아닐까 싶게 아름다운 바위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곳들을 지나, 봉긋하게 솟아 있는 정상의 봉우리를 찾아 오르는 정취도 신선하다.

왕복 4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는 1,200’가 되어, 총 3~4시간이 소요되는, 누구라도 즐길 수 있을 쉬운 산행이다.

가는 길

I-10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I-215를 만나면 이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SR-210이 나오면 다시 이를 타고 동쪽으로 3마일을 채 못가서 나오는 Waterman Ave 겸 SR-18(Rim of the World)에서 좌회전하여 계속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또 나중에는 동쪽으로 올라간다. 왼쪽으로 SR-138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5.5마일을 더 가면 왼쪽으로 Daley Canyon Road가 나온다. LA한인타운에서 여기까지는 약 80마일이 된다.

이 길에서 좌회전하여 차의 주행거리계를 0으로 눌러놓고 다음과 같이 나아간다. 0.5마일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SR-189에서 좌측길로 들어간다. 0.8마일 지점에서 우측으로 들어가자 마자 다시 좌측으로 꺾으면 이 길이 Grass Valley Road가 되는데 이 길로 나아간다. 2.8마일지점에서 길이 좌측으로 크게 꺾이는데 계속 이 길을 따라간다. 5.3마일 지점이 되면 SR-173을 만난다. 좌회전 한다. 6.2마일 지점에 이르면 길 왼쪽에 “PINNACLES Trail Head”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 주차한다. LA한인타운에서 대략 86.5마일의 거리이다.

등산코스


주차장(4,800’)에서 북서쪽으로 나있는 ‘Pinnacles Trail(3W16)’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하게 굴곡은 있지만 등산로는 거의 북서쪽을 향하여 나아가는 형국이다.

앞쪽으로 우뚝솟은 바위무더기 봉우리 3개가 보인다. 우리가 올라야 할 정상의 봉우리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길이 어디인지 애매한 지점에는 ‘Trail’이라고 쓰인 표지말뚝이 서있어 방향을 알려준다. 유난히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많은 독특한 산임을 알겠다.

산행의 초반부에는 바위덩이들 보다는 푸르른 Chaparral 숲이 더 많은 평탄한 지형을 지나게 되는데, 차츰 경사각이 커지면서 Chaparral 보다는 다양한 형상의 바위와 바위무더기들이 조금씩 더 많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봄철이라면 어쩌면 등산로 주변으로 여기 저시 자라나있는 ‘Cream Cups’라는 보기가 쉽지 않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야생화들을 보게 되는 행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1.5마일쯤의 구간에 오면 이젠 주변이 온통 바위로 둘러싸인 바위세상이 된다.

‘The Pinnacles’는 대략 1.65마일이 되는 구간에 이르러 고도 5,078’가 된다는 바위봉의 서쪽 Saddle에 올라선 다음에야 비로소 그 자태를 드러낸다.

정상의 바위봉은 한국의 풍수이론이라면 ‘문필봉’이라고 간주될 정도로 뾰쪽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는데, 그리 넓지는 않지만 일종의 평평한 고원을 지나야 하는데, 산불이 나고난 뒤에 잘 번식한다는 독초인 Poodle-dog Bush와 더불어 Manzanita, Chamise, Yerba Santa 등의 식물들이 나름대로의 관목숲을 이루고 있다. Chaparral의 푸르른 음의 기운과 붉은바위들이 간직한 지구의 양의 기운이 잘 어우러져있는 듯한 정상의 봉우리는 우람하다기 보다는 차라리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상에 오르는 길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다. 큰 바위들의 사이 사이에 놓여있는 길 표시 미니돌탑(Ducks)을 따라 오르노라면 때로는 양쪽 손까지 쓰면서 조심스레 큰 바위들을 타고 넘어가야 하는 구간도 있다. 최정상은 집채같은 바위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철옹성의 방어요새를 방불케 한다.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정을 통해 최정상의 바위에 올라 사위를 바라본다. 이 정상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주위를 빙 돌아가며 누군가가 거대한 바위와 돌로써 성곽을 쌓아 놓은 형국으로 보인다. 수백만~수천만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비와 바람 빙하 그리고 태양이 힘을 합쳐 축조해낸 형상일 것이라고 이성적인 이해를 해보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미진한 느낌이 없지 않다.

문득, 육당 최남선선생의 ‘백두산근참기’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언제라도 순간순간 요소요소에서 그 분의 박학다식 원융무애한 묘사나 감상의 경지는 물론이지만, 우리 강토와 역사에 대한 너무나도 절절한 애착과 그 현란기절한 상상의 날개에는 더욱 그저 찬탄과 흠모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일컬음을 받았었다는 말이 과연 실감이 났었고 이러한 걸출한 선현을 겨레로 둔,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뿌듯함을 만끽할 수 있었던 감동이 살아나면서, 무릇 산의 답사기임에도 그렇듯 무궁무진한 상상의 경지가 오히려 보배로운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이렇게 정상에 올라 일망무제의 광활한 경개를 대하고 보니, 새삼 스스로의 천학비재는 물론, 특히나 태생적인 천품이랄 수 있을 상상력의 빈곤함에 마냥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지극히 다양하면서도 또 질서가 있어 보이는 저 많은 바위 조형물들이 누군가의 의지적인 작용이 없이 천지자연의 순환에 따라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믿기가 어렵다. 아무리 봐도 세월과 풍우에 씻겨 내려가며 남겨진 조형물들이라기 보다는, 누군가가 밑에서 위로 올려 세우고 쌓아 올려놓은 듯 하다. 어쩌면 호모사피엔스 이전에 지능이 있는 어떤 존재들이 이곳에다 성을 쌓고 한바탕의 삶을 살아낸 그런 유적은 아닐까, 부질없이 어린아이같은 유치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동쪽과 서쪽은 몇십마일씩 시야가 탁트여 있어, Sugarloaf Mountain(9,952’)이나 Mt. Baldy(10,064’) 등의 높은 산들이라도 그저 밋밋하고 편안하게 보인다. 서쪽에서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한줌 푸른 물은 Silverwood Lake이겠다.

남쪽은 시야가 짧으므로 가까운 산들의 푸르름이 선연하고, 북쪽은 끝간데 없이 너른 대지가 하늘과 함께 어우러져 말 그대로 하늘은 가물하고 땅은 누르스름한 ‘천지현황’의 유현한 경개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몇 겁의 아득한 세월을 유전타 보면 지금 이 내몸의 일부라도 어느 찰나에는 이 쯤의 바위로 생겨나 이런 곳에 올라 있게도 될 수 있는 것일까?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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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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