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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에 오른 미국의 민주주의

2022-01-07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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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무서운 이유는 세포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죽어야 끝이 나는데 죽지를 않는다. 정상 세포는 일정 횟수 분열하고 나면 수명을 다하고, 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스스로 사멸한다. 세포 자살이다. 하지만 암세포는 죽는 기능이 없다. 무한정 분열증식하면서 한없이 커진다. 영양분을 암 덩어리에 모조리 빼앗기면 몸은 기능이 마비돼 죽음을 맞고, 그때 비로소 암도 죽는다.

공화당이 음모론이라는 암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지난해 1월6일 미국은 사상유례가 없는 정치적 참변을 겪었다. 2020 대통령 선거결과를 무산시키려고 수천명 폭도들이 연방의사당에 난입해 분탕질을 했다. 바이든 당선 확정절차를 밟으려던 상하원 의원들은 “저들 손에 내가 죽겠다”는 긴박한 두려움 속에 수 시간을 숨어서 떨었다. 폭도들에 둘러싸여 조롱과 폭행을 당한 의회 경찰들은 그때 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으로 여럿이 죽고 자살했으며 상당수가 지금껏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방의사당은 미국의 대표적 안전지대이다. 1814년 영국군이 워싱턴을 침공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침범 당한 적이 없다. 그 안전한 곳에서 미국은 대통령을 선출한다. 유권자들의 투표결과를 토대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것은 1796년 존 애담스 2대 대통령 선출 이래 이어져온 합법적 전통이다. 220여년 뿌리 깊은 민주적 절차를 뒤엎으려는 반란, 반역 혹은 무력정변이 1년 전 일어났다. 미국 민주주의의 치욕으로 기록된 이 엄청난 사건의 도화선이 더도 덜도 아닌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의사당 난입 1주년을 맞은 6일 바이든 대통령은 ‘거짓투성이의 말들’을 퍼트리는 트럼프를 정면으로 비난했다. 트럼프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1년 전 오늘, 이 신성한 장소에서, 민주주의가 공격당했다, … 국민들의 뜻이 습격 받았다. 우리의 헌법이 심대한 위협에 직면했다”며 대선 관련 트럼프의 거짓말이 초래한 참담한 사태를 성토했다.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대개 수명을 다한다. 정상세포로서 거짓말의 한계이다. 그런데 거짓이라는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났는데도 거짓말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날로 기세등등하다면 이는 정상이 아니다. 암이다. 1월6일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소속인 애담 킨징거 연방하원의원(공, 일리노이)은 트럼프의 ‘큰 거짓말(Big lie)’을 먹고 자란 음모론이 암처럼 퍼진다며 통탄했다.

트럼프의 거짓말은 지난 1년 공화당 지지층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선거는 사기였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 “바이든 승리 보도는 가짜 뉴스다. 아주 큰 거짓말이다”라며 트럼프는 전국을 돌며 지지 세력을 결집했고, 군중들은 “트럼프 승리”를 환호했다.

그렇게 분노를 나눠 먹으며 트럼프 공화당은 세를 불렸고, 당파와 인종, 지역에 따른 분열의 골은 깊어졌다. 일반 국민들의 분열도 심각하지만 폭도들의 공격을 경험한 연방의원들의 분열은 특히 심각하다. 과거 의원들은 민주 공화 당적과 무관하게 서로를 동료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지지 의원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 의회가 제대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트럼프 거짓말이 생명력을 갖는 것은 이를 필요로 하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따르는 골수 지지자들은 주로 시골지역 기독교 백인. 자신들이 잡고 있던 정치적 문화적 주도권을 유색인종 이민자 혹은 이교도들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빼앗기고 있다는 좌절감이 깊은 집단이다. 그런 두려움과 좌절감,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이 트럼프, 트럼프의 거짓말이 살아남는 비결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크게 하라, 그리고 계속 반복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결국 믿게 될 것이다” -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큰 거짓말’ 전략이다. 선전선동의 천재였던 괴벨스 그리고 히틀러는 바이마르 공화국 출범 이후 닥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실업난, 좌우익 세력의 시위와 파업 등 혼란을 ‘큰 거짓말’로 해결했다. 모든 문제는 유태인들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분노를 쏟아낼 출구를 만들어주었다. 독일국민들이 나서서 나치를 지지한 배경이다. 한편 거짓말로 얻은 지지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은 나치의 패망으로 증명되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주장들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위험수준을 넘어서 미국이 내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흉흉한 전망도 있다. 캐나다의 한 정치학자는 미국이 우파 독재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전혀 근거 없는 말만은 아니다

최근 실시된 미국 공영라디오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 중 64%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공화당 중에서는 5명 중 4명이 이런 생각이다. 지난 대선결과를 포함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깊다. 지난해부터 트럼프 지지자들은 주 선거위원회에 다수 진출했고, 의사당 난입 관련자들 중 수백명이 이번 중간선거에 출마했다. 자신들이 미국을 바꿔 놓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추진력으로 트럼프가 재선되면 미국의 앞날은 예측불허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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