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미래라는 시간 개념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무슨 일이 닥쳐올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달해도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은 속 시원히 해소되지도, 다스려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점집을 찾고 종교적 행위를 통해 불안을 달랜다. 특히 새로운 해가 찾아오면 이런 궁금증이 한층 더 강하게 고개를 든다. 미신을 믿고 징크스를 만드는 것 또한 미래를 통제하고픈 욕망이 발현된 행위들이다.
하지만 미래를 수정구슬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면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까. 그리고 정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당대 제일의 주역가로 꼽히는 대산(大山) 김대진 선생은 이 물음에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역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가”라는 질문을 받자 주저 없이 “모르고 사는 게 좋다”고 응답했다. 미래를 알수록 걱정도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자식들에게 주역을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고도 했다.
미래예측학인 주역 대가의 이런 반응은 조금 의외다.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가 독일, 스페인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응답자의 85% 이상이 미래의 부정적 사건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다고 밝혔으며, 긍정적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어쨌든 자신의 미래를 속속들이 알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대다수가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채 미래를 맞고 싶다고 밝힌 것이다. 연구진의 분석은 대산 선생의 설명과 비슷하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거기에는 고통과 후회, 걱정 같은 부정적 감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미래와 관련한 궁금증과 호기심의 정도는 국가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만약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이 조사를 실시했다면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사주나 운세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이런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문화연구도 있다.
그러니 각자의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우리 미래의 무수한 불확실성이 오히려 삶의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그 불확실성 때문에 삶은 한층 더 극적인 무대가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좋은 일이 현실이 됐을 때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훨씬 더 짜릿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행복과 기쁨의 크기는 기대치와의 차이가 클수록 커지게 돼 있다.
마찬가지로 고통이나 불행 또한 갑자기 닥쳤을 때 훨씬 더 견딜만한 것이 된다.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히 하게 되는 경험들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은 예고된 부정적 상황을 기다릴 때의 심적인 고통이 정작 매를 맞을 때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어찌어찌해 죽을 날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것이 안겨주는 고통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비록 지금 몸이 너무 아프다 해도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를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듯 삶의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 미래의 고통은 반이 되고 기쁨은 두 배가 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때 그림자 같은 미래의 실체를 붙잡으려 헛된 노력을 하는 대신 현재 가고 있는 길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앞에 놓인 삶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한층 더 견딜만한 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불확실성이야말로 삶의 아주 확실한 친구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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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