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세금이 덕지덕지 붙어 전국 평균가를 1달러이상 상회하는 캘리포니아의 개스비도 월 단위로 4달러 이상인 때는 많지 않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지난 2008년과 2011~14년에 월별 평균이 4달러를 웃돈 달이 드문드문 눈에 뛸 뿐이다. 하지만 올들어 지난 5월부터는 4달러대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매달 오르고 있다. 출퇴근 때는 물론, 종일 코스트코 개스 펌프 앞에 차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당시 2달러40센트 대이던 미 전국의 평균 개솔린 가격은 현재 3달러40센트를 오르내린다. 가장 최근 자료인 지난 11월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지난 1년 동안 휘발유 가격이 58%가 뛰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개스 가격이 흔들리면 민심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연방정부는 지난달 말 전략 비축유(SPR)를 풀기 시작했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효과가 있다면 언제부터일까, 전략 비축유는 어디, 얼마나 보관돼 있는가. 이 조처로 SPR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비상 원유비축 시설로 꼽히는 미국의 저장고는 멕시코만 연안의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주에 각 2개씩, 모두 4곳이 있다. 소금 기둥(salt dome)의 융기로 형성된 지하공간이 저장 시설로 이용된다. 최대 저장용량은 7억 배럴을 넘지만 보통 6억 배럴 정도가 비축돼 있다고 한다. 전 미국의 30일치 소비량이라고 보면 된다.
원유 비축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73년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 등 서방의 이스라엘 지원을 이유로 원유 생산량을 급감한 것이 직접 계기였다. 당시 세계 유가는 4배 급등했다. 대응책 마련에 나선 미국 등 서방국들은 비상시에 대비한 원유 비축을 대책의 하나로 삼았다.
한 가지, 미국의 SPR은 전시에 대비한 군수용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전쟁으로 원유 생산과 유통이 어려움을 겪을 때 방출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항공유나 함정, 탱크 연료로 쓰자고 저장해 둔 것은 아니다. 전략 비축유에 관한 법을 제정한 연방 의회는 극심한 기상이변으로 에너지 공급이 어려움을 겪을 때 등 SPR의 뚜껑을 열 수 있는 다양한 경우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2005년 허리케인 리타와 카트리나로 미국내 공급의 25%를 차지하는 멕시코 만의 원유 생산시설이 타격을 입었을 때도 3,000만 배럴의 비축유가 방출된 적이 있다.
이번에 방출되는 전략 비축유는 모두 5,000만 배럴. 이번까지 포함해 4차례 비상방출 중에서는 가장 많은 양이다. 지난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중동의 원유 생산이 급감했을 당시 미국은 처음 비축유 3,300여만 배럴을 방출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정치적 불안으로 리비아 등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서방국들은 6,000만 배럴의 비축유를 풀었다. 이중 절반은 미국의 저장고에서 나왔다.
비상 방출된 경우를 빼고도 전략 비축유는 모두 11차례 공매됐다. 연방정부의 재정 확보가 주된 목적이었다. 한 예로 지난 1996~97 회계연도에는 저장된 기름을 빼내 팔아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폭을 줄일 수 있었다.
관심은 비축유 방출로 유가가 잡힐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부와 민간기관의 기대와 전망이 엇갈린다. 개솔린가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비축유 방출을 계기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 내년 2월께부터는 전국 평균 개솔린 가격이 2달러 아래로 떨어지리라는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골드만 삭스 같은 민간기관은 정부의 비축유 방출 효과를 ‘바닷물에 물 한 방울’정도로 평가 절하한다. 비축유 방출은 어차피 경제적인 이유 보다 정치적인 결정이어서 앞으로 유가가 하락한다면 다른 이유에서 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가하락을 위한 백가쟁명식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유가를 잡으려면 무엇보다 각 주정부가 개스에 붙이고 있는 각종 세금을 일시 유예하라는 의견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나쁘지 않은 플로리다와 유타 등에서는 고려해 봄 직 하리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