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상대를 매치해주는 앱 운영자들에 따르면 최근 앱 이용자들이 기피조건으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것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흡연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트럼프 지지자’이다. 과거에는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성공적인 파트너, 즉 자신의 데이트 상대로 긍정적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런 조건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정치적으로 동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두드러진 요구로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를 기피하는 신청자들이 많은 만큼 “미친 진보주의자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거는 신청자들도 물론 있다.
얼마 전 나온 관련 설문조사를 보니 싱글들 가운데 무려 84%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과의 데이트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결별했다고 밝힌 사람도 67%에 달했다.
관계상담 전문가들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부부갈등 상담을 할 때 정치적인 이슈가 입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2016년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치가 날로 양극화되면서 부부들 사이에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 또한 심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꼭 관계 파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부부 관계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집 거실에 거대한 코끼리와 거대한 당나귀 한 마리가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한 여성 내담자의 비유는 정치 때문에 갈등하고 다투는 가정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비단 부부관계만이 아니다. 정치가 점점 더 극단화되면서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손상되거나 어그러지는 등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친구관계가 깨지거나 소원해지고 커뮤니티 내에서의 친소관계 또한 달라지고 있다. 아주 오랜 기간 지속돼 온 관계들조차 흔들린다. 미국과 한국정치가 날로 극단화되면서 오랜 친구들과 서먹해졌다고 밝히는 한인들도 적지 않다.
인간들 사이에 의견과 견해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추세는 우려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전에는 조세제도 등 특정 사안이나 정책을 둘러싼 이견 노출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핵심가치를 둘러싼 ‘문화전쟁’이 돼버린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시시비비의 단계를 지나 생각이 다른 상대를 ‘악마화’ 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논쟁을 벌일 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월감 환상’에 빠지기 쉽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고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의 선동 그리고 미디어들의 편파성은 이런 ‘우월감 환상’을 부채질해 근본주의 종교 추종자들을 닮은 철벽 믿음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이런 현상이 초래하고 있는 것은 정치의 저급화, 저질화이다. 특히 SNS의 온갖 반응들을 기사로 포장해 열심히 퍼 나르는 미디어들이 정치 저질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에서 치열한 정책적 논쟁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정책적인 고민을 하기보다 상대를 겨냥한 적대와 증오의 언어를 쏟아내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욱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정치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다. 국가를 이끌어 갈만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이 대통령이 되거나 유력 주자가 되고 있는 현실은 이렇듯 망가진 정치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이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할 것인가는 개인에 따라 입장과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할 한 가지는 이런 정치적 논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설득하려들기보다는 “좋은 의도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해주는 열린 태도가 바람직하다. 현명하게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다면 정치를 주제로 한 이야기 자체를 아예 피하는 것이 좋다.
정치적 이견을 단박에 해소해주는 명쾌한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병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관계를 관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줘야할 정치가 오히려 이들의 일상을 흔들고 인간관계를 손상시키고 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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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