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어머니의 생일 축하
2021-11-30 (화)
장아라(첼리스트)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나는 생일을 열심히 챙기지 않는 편이다. 남의 생일을 요란하게 챙겨주는 편도 아니다. 생일이란 게 그냥 태어난 날짜일 뿐이지 뭘 대단하게 수선을 떨며 매해 지내냐 하는 주의이다. 가족이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 해서 겉으로도 속내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가끔 보면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서프라이즈로 이벤트를 준비해서 자신의 짝을 놀래키고 감동 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나는 저 여자가 나라면 얼마나 저 순간이 불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그만큼 날 위해 요란하게 준비된 자리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나는 오히려 남을 위해 잔치를 베풀으라면 항상 기꺼이 나서서 한다. 받는 게 불편할 뿐이다. 얼마 전 그것도 극단적 이기주의의 한가지라는 글을 보고 살짝 놀랐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이기주의씩이나...
미국으로 시집을 온 후 나의 어머니는 내 생일을 못 챙겨주고 미역국을 못 끓여주는 것에 대해 안쓰러워하고 미안해 하셨다. 나는 사실 생일날 미역국 못 먹는 게 아쉽지 않았다. 그것말고도 맛있는 것은 넘쳐났다. 어머니는 또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의 생일날이면 찰밥을 찌셨다. 압력솥에 찹쌀과 팥을 넣고 뚝딱 만드는 그런 류의 밥이 아니다. 커다란 찜기에 베를 깔고 찹쌀과 미리 살짝 삶은 팥을 간을 해서 여러번 쪄내는 밥이었다. 중간에 저어주고 팥물을 부어주고 하면서 몇시간을 공을 들이셨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쪄낸 쫀득한 찰밥을 그날 생일 당사자에게 어머니가 직접 들고 방문 배달을 해주셨다. 그 스테인리스 밥통을 열면 ‘축 생일’이라고 팥으로 글이 쓰여 있었다. 엄마의 사위들도 딸들도 손주들도 다 그 찰밥을 받아봤다. 김치 하나만 가지고도 그 찰밥은 정말 맛난 생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그 찰밥을 만든 어머니가 세상에 안 계신다. 나는 몇달 전, 먹어보기만 했던 그 복잡한 찰밥을 도전해서 엄마의 맛을 실현해봤다. 그걸 받은 내 언니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장모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던 형부들도 생일날에 장모님이 해주신 그 찰밥이 그립겠지. 며칠 전 내 생일에는 사랑의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나는 내 어머니의 생일 축하가 새삼 그리워졌다.
<장아라(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