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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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소니야 희옥

2021-11-22 (월)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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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살 때, 10살 된 딸을 위한 한국말 선생을 구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도대체 누가, 왜? 하는 호기심에서 만나 보니, 영국인 아빠와 독일인 엄마가, 자기네 애가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입양한 딸 소니야를 위한 선생님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혹시 한국 이름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 엄마가 ‘김희옥’이라고 확실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 아들하고 나이가 같은 희옥이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말을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한글, 한국 문화, 음식 등 한국에 친숙해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희옥이는 영어는 물론, 독일어도 아주 잘 했다. 몇 년 후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는 내 친구에게 부탁해, 지성으로 음식도 잘 해 먹이곤 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고등학생이 된 희옥이가 한국 입양인 행사에 참가하게 되어 한국을 왔다. 그때 얘기가 친구들하고 이태원을 가니, 상인들이 ‘아니, 한국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 하느냐’고 흉들을 보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감으로 알겠단다. 도대체 그애들 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느 날 내 동생네 집에를 같이 갔는데, 어린 조카들이 ‘엄마, 엄마’ 하며 제 엄마를 따라다니는 걸 보고 있던 희옥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어도 끝까지 대답을 안했다. 대학생이 된 다음에도 다시 한국에 가, 입양 기관들을 통해 생모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결국은 못 찾고 말았단다.


몇 년 후 이메일을 통해 다시 연락이 되었다.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곧 영국 남자랑 결혼을 할 예정인데, 혹시 결혼식에 좀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무척 안타깝게도 사정이 안 되어서 못 가고 말았지만. 그후로는 손편지를 한 번 받았는데, 주소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어쩜 그렇게 악필(?)이었는지 그만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희옥이에게는 어쩌면 입양된 것이 한국에서 자랐던 것보다 훨씬 잘 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양부모 만나 교육도 최고로 잘 받고, 똑똑해서 변호사까지 되었으니, ‘이제 와서 생모는 찾아 무얼 하누?’ 싶다가도, 본인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궁금하다. 좀 덜 번듯하더라도 같은 피를 나눈 부모, 형제, 친척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꽁꽁 숨어 있지는 않을까?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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