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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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한글, 한국말, 영어

2021-11-15 (월)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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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의 이야기다. 남자는 여기서 태어나 한국말도 못하고 한글도 못 읽는데, 여자는 늦게 미국에 와, 기본적인 영어만 겨우 하는 상황이었다. 남자는 박사 학위까지 있는 똑똑한 사람이어서, 혹시 한글 배울 마음이 있다면 가르쳐 주겠노라고 자청을 했다. ‘가나다’부터 시작했는데, 역시 세종대왕께서 만든 한글은 과학적이고 쉬워서인지, 한 시간 만에 떠듬떠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글은 이렇게 쉽지만 한국말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같이 살면서 매일 쓰는 방법 외에는 가르칠 길이 없는 듯하다. 요즈음 한국 TV를 보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다들 언어의 천재가 아닐까 싶다.

우리 조카는 부모가 열심히 한국학교를 데리고 다닌 덕분에 한글을 느리지만 읽을 수는 있는데, 뜻은 모른다. 조카 며느리는 많은 친척들에 둘러싸여 자라서 한국말을 별 어려움 없이 알아듣고 말도 하나, 한글은 못 읽는다. 좀 나이가 들어서 배우려니까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나. 한글로 된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를 할 때면, 조카가 떠듬거리며 읽고 조카 며느리는 ‘아! 이렇게 하라고?’ 하며 알아듣는다. 기가 막힌 조합의 부부다.


여기 미국에 와 영어를 써야 하는 우리들, 어찌어찌 의사는 통하고 살지만, 하다못해 손주들과도 제대로 소통이 어렵다. 그애들이 보통 말하는 속도로 쏟아부으면, ‘천천히 다시 말해 봐’ 해야 좀 알아듣는다. 자기들끼리 빨리 말할 때에는 주제가 뭔지도 알기 어렵다. 애들이 어렸을 때, 내가 서툰 영어로 전화를 하는데, 아들애가 옆에 앉아서 손가락을 꼽으며 센다. 내가 내는 ‘음, 음’ 소리를 세었다나? 막 화를 냈다. ‘나도 너처럼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면 잘 했을 거야. 내가 영어 못해서 너희들을 학교를 못 보냈냐?’ 아들이 미안해 하며 내 영어에 대해서 다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른 되어서 온 우리들이 영어 좀 못 하는 건 당연하다. 좀 더 떳떳하게, 당당하게, 모르겠으면 쭈뼛거리지 말고,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는 게, 못 알아들었으면서도 아는 척 지나가서 손해 보는 것 보다는 낫다는 걸 경험에 의해 알게 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영어를 좀 잘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 짐작에는 그분들도 영어보다는 한국말로 시원하게 떠드는 걸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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