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뉴욕시장에 취임했던 데이빗 디킨스가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딘킨스 시장은 당시 인종 갈등, 범죄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고 있던 뉴욕에 인종 화합이라는 숙제를 떠안고 1990년 뉴욕시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후 뉴욕은 범죄 발생률이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고 인종화합은 유권자들의 기대와 달리 실현성이 점점 더 희박해졌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러 올해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 실시됐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흑인 에릭 아담스 브루클린 보로청장이 승리했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 개표에서 50.5% 득표율을 얻은 에릭 아담스가 지난 2일 치러진 본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커티스 슬리와를 누르고 당당하게 뉴욕시장이 되었다.
뉴욕에서 흑인출신 시장은 지난 딘킨스 시장(1990-1993년 재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 올해 당선된 에릭 아담스는 전직이 베테랑 경찰이다. 갈수록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뉴욕에 과연 경찰 출신의 시장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1970년대 말은 뉴욕일원의 흑인 밀집지역에서 한인상인과 흑인고객간의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맨하탄 할렘, 퀸즈 자마이카, 브롱스, 브루클린 등지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10년후 딘킨스 시장 시절, 한인 청과상인과 흑인 주민 간의 마찰로 빚어진 처지 애비뉴 사태는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이는 1990년 1월 18일 브루클린 플랫부시 소재 야채가게인 레드애플에서 물건을 훔친 아이티 출신 이주 여성을 종업원들이 함부로 다뤘다는 이유로 시작된 사건이다. 주인 장봉재씨 또한 그 흑인 여성에 손을 댄 것으로 허위 증언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딘킨스 시장이 사건의 진상 조사를 맡긴 위원회가 제대로 대응을 못한 결과 흑인 시위대의 불매 운동이 장기화되고 한흑 갈등이 뉴욕 전체로 확대됐다.
마침내 뉴욕의 한흑 갈등이 기폭제가 되어 이듬해 시카고 로즈랜드 보이콧 사건, LA 4,29 폭동으로 이어지면서 한인들이 결국 미국내 인종갈등의 나쁜 이미지를 안게 되었다. 흑백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해 열심히 땀 흘리며 장사하는 한인들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흑인 최초의 뉴욕시장 딘킨스는 한흑 갈등을 수수방관만 하다 보니, 경찰들도 흑인들의 폭력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더구나 시장이 흑인이고 보니 자연 흑인 커뮤니티로 팔이 굽게 되고, 한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참다못한 한인들이 결국 팔을 걷어 부치고 시청 앞에 나가 시위를 벌였다. ‘9.18 인종화합 평화대회’라는 이름으로 그날 시위를 위해 시청앞에 모인 한인들은 무려 1만2,000명이나 되었고,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도로는 완전 마비가 되었다.
당시 한인사회는 집회 전 딘킨스 시장에게 3일 안에 경찰에게 흑인들의 시위를 진압하도록 명령하지 않으면 시장 보이콧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엄청난 한인 인파가 모여들자 결국 딘킨스 시장은 시위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능한 딘킨스 시장은 뉴욕의 전 언론이 집중된 가운데 평화적인 연설을 하면서 극적으로 화해를 꾀하게 된다.
한인 커뮤니티는 이 일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겪었다. BLM(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미 전역을 뒤덮고 있는 지금, 흑인시장의 당선이 앞으로 한인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평화대회 당시 뉴욕타임스까지 사설에서 “브루클린 상점 앞 흑인 시위문제는 일개 검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 시장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확실하게 강조했다.
뉴욕에서 아사아계 겨냥 혐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번 흑인시장의 당선은 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뉴욕의 한인들은 과거를 거울삼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늘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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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