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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내 악기, 첼로

2021-11-09 (화) 장아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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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소리 참 좋아합니다.”

내가 첼로를 하는 걸 아시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인사를 건네온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잡게 된 첼로는 이제 40년 가까이 함께 해오고 있다. 피아노로 동네를 주름잡던 큰언니의 영향으로 딸 셋이 줄줄이 악기를 전공하게 되었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던 부모님은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형편이 넘쳐나서 시작한 것은 더욱 아니었다. 딸 셋이 음악을 했다고 하면 사업가 집안쯤 되는 걸로 지레 짐작들 하시나 부모님은 두 분 다 학교 선생님이셨다. 집안의 기둥이 흔들리려면 음악을 시키고 기둥이 뿌리째 뽑히려면 정치를 하라는 말이 있다던데 친척 중에 정치를 하신 분도 있었으니 우리 집안이 쫄딱 망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나는 첼로를 처음 본 순간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십대 때부터 열심히 클래식을 들었다. 바이올린과 첼로 협주곡에 전율하며 듣던 나이가 6학년 때였다. 물론 우아하게 클래식만 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80년대 중반 그 얼마나 가요가 끝내줬던가. 가요 반 클래식 반 들었다. 예고를 다니며 음악사를 배울 때 더 깊이있게 첼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첼로는 저 먼 옛날에는 그저 반주 악기였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가서 이번 연주곡이 비발디나 헨델이라 하면 ‘오, 이번 연주는 날로 먹겠네’ 하고 빽빽한 음표에 허덕이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가여운 눈빛으로 보곤 했다. 그러나 그런 시절에도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하는 첼로 무반주 조곡을 만들어 지금까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첼로의 대표곡으로 추앙받고 있다.


첼로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첼로는 오보에와 더불어 여성에게는 연주가 금지된 악기였다. 오보에는 악기를 불 때 얼굴이 벌개지고 일그러지는 것이 여성답지 않다는 이유였고 첼로도 연주 자세가 다소곳함을 벗어나는 게 그 이유였다. 빈 필하모닉이 창단 후 155년만인 1997년에 첫 여성 단원을 허용했으니 클래식 음악계의 보수성을 볼 때 그리 놀랄 만한 이유는 아니다.

첼로의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음역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첼로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꾀꼬리 등 동물들이 연상되는 다른 악기 소리에 비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중후한 저음이 울리는 솔로 곡을 듣다보면 나긋한 음성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받은 기분이 든다. 지금 이 오후도 그렇다.

<장아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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