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맨 마지막은 다윗의 출현에 대하여 이렇게 적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 서술은 다윗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고, 또한 다윗이 혼자 다윗이 되지 않았음을 명백히 증언한다. 살몬에서 보아스로, 보아스에서 오벳으로, 오벳에서 이새로, 이새에서 다윗에게로, 그리고 다윗에서 예수님에게 이르는 축복의 물줄기를 보노라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은혜를 베풀어 줌으로서 사람은 탁월한 인물이 된다.‘“(허바드의 ’The Book of Ruth’ 중에서)
포도나무는 사회성이 강하다. 혼자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포도농사다. 농부의 모성애적인 돌봄과 그를 돕는 포도원 일꾼들과 하늘이 베푸는 한없는 은총과 스스로가 흘린 땀이 서로 연결되고 계승되어서 포도농사는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사회성이 강한 성품을 지녔다. 존 엘드리지가 말했다. “혼자의 힘으로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 이웃과 은혜를 나누어보지 않은 사람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른 어떤 책임보다 중요하게 말한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아브라함 자신에만 주시는 복이 아니라 그의 후손 이스라엘에게 미치고, 이 땅의 모든 백성에게 미치는 공동체의 복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인류 조상의 아종(亞種)중 최후 승자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게 패배한 호모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s)은 놀라운 정도로 지능이 높았고 숫자도 많았다.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스스로 불을 피울 줄 알았고 신체 크기, 사냥 기술, 기후 적응력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두 아종의 대결의 결과는 호모 사피엔스의 압도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두 인류 아종의 차이는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는 가졌는데 호모 네안데르탈인이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서로 유대관계를 맺는 공동체 능력’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이웃과 언어, 감정, 의사를 노출하면서 살아간다.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혼자가 아니다. 언제나 촘촘한 그물처럼 이웃과 연결되어있다. 현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사회적 그물망을 구성하는 인간이며 인격적 관계를 맺는 공동체 본능을 지닌 모방자들이다.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는 작은 공동체에서 큰 공동체로 연합하여 더 큰 집단을 이루어나갔다. 그 만큼 이동 횟수가 많았고 서로 배우고 모방하는 기회도 많았다.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닌 노마드(nomad)적 사회성 하나가 부족해서 패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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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 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