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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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크기 좋은 나라

2021-11-06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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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애기 춥겠네. 애기 엄마 애기 옷 좀 더 입혀야겠어.” 오늘도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꾸중 아닌 꾸중을 듣는다. 따뜻한 남가주에만 있다가 이제 제법 찬바람이 부는 한국 가을의 한가운데 와있다. 초보 엄마는 이런 날씨에 걸맞은 아이 옷 입히기에 서툴러 매일 잔소리를 듣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필요 없던 도톰한 내복도 사서 입혔는데 지나가는 아주머니, 할머니들 눈엔 아기가 헐벗어 보였나 보다. 어제는 지나가는 할머니가 내 외투까지 그 자리에서 벗게 해서 유아차에 탄 딸아이에게 덮어주고 가셨다. 처음에는 난생처음 보는 아이를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나 싶었는데 거의 매일 이런 상황에 처하니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오늘은 외출했다가 화장실에서 아기 기저귀를 혼자 갈고 있는데 짐이 많아 쩔쩔매고 있으니 옆에 아주머니께서 뒤처리할 동안 아기를 잠시 안아주셨다. 아이가 너무 순하고 예쁘다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아이와 함께 하는 고된 여행이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고국의 정이 또 힘을 나게 한다.


이동 중 택시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택시를 탈 때마다 아이를 안고 휴대용 유아차를 접었다 폈다 하느라 승차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기사님들께서 천천히 하라고 오히려 배려해주시고 도와주셔서 마음이 편하다. 잘 모르는 길도 척척 알려주신다.

이제 한국에서도 여기저기 수유실과 아이 기저귀 교환대 등이 설치되어 있고 유아차가 다니기 편하도록 길도 잘 닦여 있다. 아이용품도 부모가 쓰기 편하도록 미국보다 훨씬 세분화되어 있고 대여 시스템도 잘 갖추고 있어 여행기간 동안 잘 활용 중이다.

시스템은 점점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제 아기가 귀한 나라가 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가임여성 1명 당 합계출산율이 0.84명이라고 한다. 세계 꼴찌의 출산율이다.

나야 잠시 방문 중이니 한국이 아이 키우기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또래 임신 중이거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십분 이해가 갔다. 임산부석을 마련해두면 뭐하나. 임산부 배지를 단 임산부를 앞에 두고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출산 휴가 제도가 있어도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당장 이번 달 아이를 낳는 친구는 두 달 간만 쉬고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유치원 대기자가 너무 많고 신생아를 맡길 도우미도 구하기 쉽지 않아 마음을 졸이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고 이런저런 제도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기만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나라가 될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텔레비전에서는 채널 여기저기 스타들의 육아 프로그램이 인기다. 화면 너머로 보는 아이들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저출산이 이어지면 우리는 이제 화면 속으로만 아이들을 보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지나가는 아이가 추울까봐 아이의 옷깃을 여밀 줄 아는 마음들이 있는 나라에 나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본다. 아이가 크기 좋은 나라에 미래가 있다. 모두가 아이 키우는 집을 조금 더 배려하고 알맞은 정책도 뒷받침된다면 저출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아이와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거리에 딸아이와 같이 뛰놀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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