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늦깎이 문학소녀
2021-11-01 (월)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초등학교 때, 겨울 방학 숙제에 글짓기 한 편 같은 건 제일 쉬웠다. 대체로 내기만 하면, 잘 했다고 리본도 붙고 상도 받았던 것이 아마도 내 글쓰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춘기에 문학소녀 아니었던 사람이 없다지만, 나도 중고등학교 때는 문예반에서 글을 열심히 써댔다. 가끔씩 선택이 되어 교지에라도 나올라치면, 그날은 친구들이며 지나가는 선생님들까지, 잘 봤다고 하시고 칭찬들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지난번에는 어떤 친구 하나가 내가 고등학교 때 썼던 글의 제목까지 기억하고 카톡방에서 얘기하는 바람에 정말 놀라기도 했다. ‘꿈이었어요’였다나? 나도 다 잊어버린 걸.
아무튼 그때는 내가 여기다 내 일생을 걸리라고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를 국문과를 선택해서 가긴 갔지만 그걸로 끝, 어째서인지 4년을 글 한 줄 안쓰고 그냥 졸업했다. 하지만 일생을 살면서 항상 ‘언젠가는 나도…’ 하는 마음만은 갖고 살았다. 옛날 친구들이 가끔씩 ‘너는 글 좀 안 써 ?’ 하기도 하고, 또 언니가 ‘너도 이제부터라도 글 좀 써 보지’ 하면 ‘글을 썼다 하면 다 내용이 가족이나 내 주변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데, 내가 글로 다 폭로하는 걸 원하냐? 안쓰는 걸 다행으로 알라’며, 협박 비슷하게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때 같이 문예부 하던 친구 하나는 아예 문예창작과로 가더니 계속 글을 써서, 이제는 어엿한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무슨 큰 상도 받았다고 하고...
하지만 별 큰 아쉬움 같은 건 없다. 그럴 만한 때에 글쓰기에 빠져서 일주일에 편지 몇 통씩 쓰고, 시험공부 보다는 소설책에 빠져서 엄마를 걱정시킨 일 등이 있지만 그뿐, 한밤중에 깨어서 정말 내가 일생 글을 쓸 자신이 있는가,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엄중한 말들을 생각해 보면, 워낙에 그렇게 심각하고 어려운 일은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편이라, 그냥 이렇게 가끔씩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쓰고, 신문에 기고도 하고 하면서 사는 일생도 많이 못하지는 않은 거라고, 자신을 달래 본다.
최근에 ‘시바타 도요’라는 일본 할머니가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서 100세에 첫 시집을 내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는 백세 인생 시대라니까,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네. 이제부터라도 다시 결심을 해 볼까나.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