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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소피아 대성당

2021-10-25 (월)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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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소아시아 즉 오늘날의 터키를 여행 해본 분들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야 소피아 대성당’을 관람하였을 것이다.
세계 건축사에 전대미문의 걸작으로 꼽히는 소피아 대성당은 그 처절하고 숨 막히는 동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비통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제국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자존심이자 정신적 지주였지만 오스만 제국에 의해 최후의 날을 맞이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비잔틴제국은 1453년 오스만제국에 함락 당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기독교 최대의 성소피아 성당이 이슬람에 점령 당하자 그 당시 유럽인들의 공포와 충격은 극에 달하였고 더 넓은 의미로는 중세 유럽이 막을 내리는 시간들이었다.
오스만 제국으로 인하여 육로로 인도를 가는 무역 통로가 막히자 해상무역으로의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많은 비잔틴 신민들이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하면서 르네상스 부흥의 꽃을 피우게 된다. 비잔틴의 몰락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대변혁이었다. 역사가들은 비잔틴 제국이 유럽과 소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유럽을 오스만 제국으로 부터의 침략을 막아 주었다고 결론 내린다.

성소피아 성당은 1500년의 세월을 견디고 그 일대 여러 차례의 지진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웅장하고 장엄한 자태로 남아 있다. AD 532년에서 537년 동안 유스티니아우스 황제에 의해 건축 되어지고 5만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아파트 20층 높이의 기둥( Column)이 전혀 없이 건축된 불가사의한 기독교계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비잔틴 제국은 언어와 문화가 그리스적이며 동방제국이었다. 현재 이 성당안에는 황제의 대관식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성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성당 이다.


이슬람 땅에 방치된 세계기독교의 최대 유산인 성소피아 성당을 보기 위해 오늘날에도 일년에 4백만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을 방문하며 기독교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성소피아 성당을 보면 정복 당한 자의 비애와 슬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오스만 제국에 점령 당한 후 모하메드 2세에 의해 성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변경 되고 이때 성당 벽면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들은 회칠을 당해 버리고 많은 십자가들은 지워져 버린다. 역사의 주인이 바뀐 세상이 되었다.

그후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후 초대 터키, 케말 파샤 대통령에 의해 정치와 종교는 구분 되어야 한다며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86년간 사용 하게 된다.
이때 회칠을 당한 콘스탄틴 대제의 성모에게 봉헌하는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와 유스티니아우스 황제의 로마 대법전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 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회칠이 벗겨지고 일반에게 공개 된다. 이들 모자이크들은 성화이기 이전에 우리 인류문화의 영원하고 위대한 유산들이다.

최근에 성 소피아 성당은 또 한번 대수난을 당하게 된다. 현재의 터키, 에드리안 대통령에 의해 2021년 7월말 부터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변경 되어 버린다. 로마 가톨릭 프란시스코 교황은 성명을 발표하고 “성소피아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하였고 동방정교회는 어떤 성명도 내지 않았고 수많은 개신교의 그 어떠한 종파도 침묵 하고 있었다.

성소피아 성당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으며 소피아 성당 아주 가까운 맞은편에 이슬람 최대의 블루모스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소피아 성당은 이슬람모스크로 변경되고 말았다.
이슬람 국가 속에 방치된, 마치 망망대해 속에 외로이 떠 있는 섬 같은 세계 최대의 기독교 유적인 성소피아 성당의 상상 할 수 없는 변모는 나를 눈물 짓게한다.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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