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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글] 고향도 묻지마라

2021-09-16 (목) 강현진 (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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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을 앞두고 요즘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하는 이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그 지방의 특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공약을 발표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공약이 선거가 끝난 후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을 지 비난을 받을 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자신이 내건 공약이 실천되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대통령 출마자들이 발표한 공약 중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지난날의 사건을 들추어 지역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도 있는 터라 내 주변 다수의 한인들은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나는 각 후보자들의 지방 특색을 살펴보다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운 후 나라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정도전에게 팔도 인물평을 물어 본 것이 떠올랐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그 평가가 어떻게 이용됐는지 알 수 있다.


첫째로 정도전은 경기도 사람을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거울에 보이는 것처럼 맑고 깨끗하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지저분한 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얄팍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도전은 그들을 큰일을 시킬 인물이 못된다고 했다.

다음으로 황해도 사람을 춘파투석(春波投石)이라고 표현했다. 잔잔한 호수에 던지는 돌과 같이 조용하고 온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여도 잘 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에 대한 평을 쓰려고 했지만 잘못하다간 혼날 것 같아 생략하겠다.

그래도 함경도 사람 평은 하고자 한다. 함경도 사람인 내가 내 고향 흉을 보는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우리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표현할 때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악평하는데, 이 말은 정도전이 함경도 사람을 평한 말이다. 이전투구란 말은 진흙탕 바닥에서 개가 소 뼈다귀 하나 놓고 서로 엉켜 뒹구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뜻한다. 정도전은 함경도 사람들이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직에 등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함경도(함흥 출생) 사람인 이성계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변하자, 정도전은 말을 바꾸어 함경도 사람들은 우직한 성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소과 같이 순진하고 바르다고 표현하며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가 웃으며 말하기를 앞에 표현한 말이 맞네 하며 웃었다는 이조 야화(이야기로 전해 오는 기록)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정도전의 말대로 조선 왕조 오백년 역사 속에 황해도 개성 사람들은 정치에 관여한 인물들이 많다. 반면에 함경도 사람들은 정치에 관여한 사람이 세조(7대)대에 몇 사람 밖에 없다.

사람을 평가할 때 출신 지역이나 외형적 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그 사람의 정신, 사상과 행동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 절대 고향을 묻고 그 사람을 평하지 말라. 잘못하면 큰 실수할 수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그 지역과 인과 관계, 정치적 상황을 보고 자기에게 얼마의 득이 될까를 계산하고 정책을 세워서는 안된다.

요즘 일부 입후보자들이 공산당식으로 지역 갈등, 지나친 사건들을 들추어 적개심을 조장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비민주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결코 국민들은 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누구에게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모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때 올바른 사회가 이루어지고, 지도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다. 과거처럼 거짓과 선동으로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정치인들의 생명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때 지속된다. 그 신뢰를 잃는다면 그 정치인은 역사에 영원히 낙인찍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정치인이나 이곳에서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 이론을 쓴 마르크스의 교훈을 전하고 싶다. ‘민중은 역사를 만들기도 하지만 역사를 무너트리기도 한다’는 말을 명심하기 바라며, 정치인, 봉사자들은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활동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강현진 (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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