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할머니 I
2021-09-08 (수)
손주리(플로리스트)
9월의 첫째날, 아침 약속이 있어 밀브레에 갔다. 더운 곳이라 얇은 옷을 입고 갔는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자니 약간 선들하였다. 어제까지 덥더니, 바삭한 공기가 푸른 하늘과 함께 가을의 길목임을 알렸다. 정갈한 가을은 이불홑청에 풀 먹이는 냄새와 함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왔다.
내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와의 제일 오래된 기억은 한 네다섯살 때쯤 일이다. 이름을 찾으려고 애를 써봤지만 알 수 없는, 약간 희귀종인 꽃나무가 화단에 있었다. 아버지께서 포도나무를 심는다고 대부분 꽃나무를 베어버렸을 때도 살아남았던 나무인데 봄이면 짙은 꽃분홍색의 앙증맟은 꽃을 피웠다. 봄비가 와서 그랬던지 어느 날 싱싱한 꽃이 후두둑 다 떨어지고 말았다. 흙바닥에 사뿐 내려앉아 있는 꽃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던지 나도 모르게 그 꽃을 줍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주워도 꼬맹이 손바닥에서는 꽃이 연신 흘러내리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그때 할머니께서 손잡이가 달린 나무 함지를 말없이 건네주셨다. 손으로 깎아 만들었을 바가지 가득 꽃을 담아 기다리고 계시던 할머니께 갖다드렸다. 할머니의 환한 미소와, 두툼한 나무 함지에 작고 화려한 꽃이 가득 담겨 있던 그 균형 감각은 아직도 선명하고, 아마도 내 의식의 밑바닥에 미의식의 한 씨앗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후각적으로는 풀 쑤는 냄새로 기억한다. 정갈하셨던 할머니는 이불홑청 풀 먹이는 것은 반드시 직접 챙기셨다. 비위가 약했던 나는 방까지 따라오는 풀 끓이는 냄새가 싫어 하루는 ‘할머니, 저는 이 냄새가 싫어요’라고 불평을 했다. 언제나와 같이 소리없이 웃으시더니, 풀은 농도가 중요하다시며 풀 쑤는 전 과정을 직접 해보게 하셨다. 가루를 덩어리 없이 잘 개서, 눌지 않게 계속 저었는데, 아마 농도에 대한 감을 잡으라고 그러셨던 것 같다. 물이 풀이 되는 과정이 신기했었던지 어쨌든 그 뒤로는 풀냄새에 대한 저항이 없어졌다. 장마철에 빗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풀 먹인 이불의 감촉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감각이다.
교육학은 배워보지도 못하셨던 옛날분이 얼마나 현명하셨는지 지금 되돌아보아도 감탄스럽다. 만약 그때, 쓸데없이 떨어진 꽃은 왜 줍느냐고, 또 풀냄새가 어떠냐며 유난스럽다고 야단이라도 치셨다면, 안그래도 소심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을지 모를 일이다.
<손주리(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