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飮酒歌舞), 할일을 하고 난 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
아이고 배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던데? 나하고 비슷한데 내가 좀더 노력하면 아픈 배는 고칠 수있다. 그러나 죽자고 노력해도 계속 배가 아프면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지는 걸 인정하고 부러워하면 속 편하다는 걸 알기까지는 참 고단했다.
나도 한국인이라 음주가무의 DNA가 분명히 있어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출줄 알았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슬픔뿐이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송창식의 ‘고래사냥’ 노래가사처럼 나는 그놈에 대학엘 가면 남자들이랑 소주 마시고 기타치며 경춘선 기차를 타고 떠날 줄 알고 공부 열심히 했다.
웬 걸, 노래 못하는 음치고, 박자를 무시하는 박치라는 건 중학교 때 알아버렸다. 음악선생님의 피아노를 듣고 한마디 악보를 그리는 시험을 빵점 맞은 내게 넌 체르니까지 쳤다는 애가 어쩜 하나도 못그리니? 그것도 제일 앞에 앉아서? 그뒤로 엄청나게 크고 맑은 소리를 내는 나는 합창을 할 때면 맨 앞에서 절대로 소리내지 말고 입만 크게 벌리는 립싱크를 하라는 엄명을 받았다.
어쩐지 난 노래방엘 가서도 졸거나 온갖 심부름만 하고 신혼 집들이 땐 악마같은 신랑친구들한테 노래 안하고 버티다가 파혼 당할 뻔했다. 지금도 음악 좋아하는 남편이 틀어놓으면 듣기 싫다고 방문을 닫아놓는다. 어쩌다 아무것도 안하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으며 나는 한번에 .한가지밖에 못해서 라며 애써 나를 위로한다.
춤이라고 별 수 있나! 교양체육시간에 포크댄스를 배우는데 선생님한테 밟혀가며 배웠어도 아무도 나하고 짝이 돼주질 않아서 눈물반 콧물반 수영장 물을 다 마시며 겨우 학점을 따던 날 어릴때 엄마가 보내준 무용학원에서 너울너울 부채춤이랑 꼭두각시춤 시범공연은 못하고 쪽두리 쓰고 한복입고 심통이 나서 사진만 찍었던게 떠올랐다.
물만 잘마시는 나는 환타 포도쥬스를 와인으로 바꾸는 능력으로 낮술에 헤롱거리고, 판피린 감기약을 내게 준 친구는 이틀동안 내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리며 울게 했다.
다행히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술 한잔에 한 점이라는 안주를 세 점씩 집어먹어 친구들은 머리를 쥐어박았고 남자친구들은 주머니속 지갑을 꽉 쥐고 헤어지리라 결심했다.
여전히 식탐은 남아 남편이나 애들 커피를 한모금씩 살짝 얻어마시다 긴긴밤 잠 못이루며 잠옷귀신이 되어 돌아다니며 중얼거린다. 나도 이젠 부자니까 담에는 비싸도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으로 사먹어야지….
그대신 내게도 남을 배 아프게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다행히도 쬐금은 주셨다. 글이나 강의를 듣고 요약해서 족보노트를 만들어 벼락치기 공부하는 친구들을 도와서 함께 졸업을 했다.
나와 여행을 함께 하는 이들은 나의 계획표 대로 움직여 몸과 마음을 만족하게 만드는 한국여행 전문가였다. 꼼꼼히 청소는 못하지만 정리정돈은 얼마나 잘하는지 뭐가 어디 있는지 설명하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조용히 공부하며 연구는 못해도 내가 아는 건 잘난체를 하는 게 흠이지만 정확하고 쉽게 설명 할 수 있는 목소리 큰 인기있는 교사이고 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마음의 지능지수)가 높으므로 그까짓 음주가무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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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