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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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우선순위

2021-08-26 (목)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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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을 비롯한 수많은 일을 다 어떻게 처리하나 묻는다면, 당연히 우선순위 문제라고 대답하면 된다. 언젠가 배운 대로 모든 일을 네 가지로 분류하면 간단해진다. 급하고 중요한 것, 급하고 안 중요한 것, 안 급하고 중요한 것, 안 급하고 안 중요한 것. 우리는 보통 이중에 급한 것들에 쫓기고 쫓아다니다가 인생을 마치기 쉽다. 그런데 인생의 질을 바꾸는 것, 더 나아가 인생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안 급하고 중요한’ 것들인 것 같다. 여기에는 건강관리를 위한 운동, 가족과의 시간, 미래를 위한 투자와 자기계발이 포함될 것이다. 한정된 시간에서 안 중요한 것들의 유혹은 과감히 쳐내고, 당장 하지 않아도 되기에 놓치기 쉽지만 사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붙들어 어떻게든 우선순위에 올려둘 때, 인생을 쫓고 쫓기며 살지 않고 좀더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부부는 최근에서야 자녀 양육에도 이 원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급하고 중요한 것들, 즉 아이들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내일까지 내야 하는 숙제를 시키고 하는 것들만 간신히 쫓아다니다가 문득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가족 리뷰 미팅을 시작했다. 네 식구가 모두 모여 한주를 돌아보고 건의할 것이나 의논할 것들을 놓고 이야기한다. 최근 미팅에서는 아이들이 왜 자꾸 다투게 되는가 다같이 원인을 분석하고 한주 동안 서로에게 친절하기로 했고,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할 때의 예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상의 잔소리로 귓등을 스쳐 지나갈 법한 사항들이 다함께 참여하는 공식 미팅이라는 형식을 가지면서 놀랍게도 아이들이 반응하고 변하는 걸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안 급하고 중요한’ 이 장치가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거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수많은 중요한 일들에 어떤 우선순위를 부여하느냐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인생이 너무 딱딱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어느 정도의 ‘재미’에 가산점을 주고 만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저녁 시간이 비었을 때, 많은 일들을 놓고 순간 저울질을 한다. 눈앞에 지저분한 거실을 치울까, 간만에 큰아이 공부를 좀 봐줄까, 어제 다 못하고 잔 데이터 분석을 할까. 내일까지 읽어야 하는 논문을 뒤적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들쳐메고 아이들과 공원에 나간다.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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