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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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팬데믹을 통과하며

2021-07-29 (목)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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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팬데믹 시작부터 1년여가 어떻게 지나갔던가. 남편은 재택근무로 바뀌었지만,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그렇듯 없던 워라밸이 갑자기 생길 리 만무했다. 초등 저학년 큰아이의 풀타임 교육은 고스란히 부모 몫으로 떠넘겨졌고, 애프터스쿨 데이케어도 모자라 베이비시터까지 쓰면서 간신히 유지하던 우리 맞벌이 부부의 팽팽한 삶은, 이 모든 아웃소싱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그야말로 원조가 끊긴 재난민처럼 막막해졌다. 나는 일을 희생해가며 두 아이들의 교육과 케어를 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나, 5월부터는 필수업종 종사자로 분류되어 예전엔 바트로 다니던 왕복 백마일의 출퇴근길을 운전해 다니기 시작했다. 백신도 요원하던 때, 난 바이러스가 무서운 건지 사람이 무서운 건지 헷갈리는 긴장감 속에 내내 일해서인지 퇴근하면 피곤해 뻗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희생된 것은 아이들이었다. 엄마는 집에 없거나 뻗어 있었고, 아빠는 집에 있으나 집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집 안팎으로 아동 방치에 가까운 날들, 그 아슬아슬한 여름이 끝나가던 즈음에 결국은 사건이 터졌다. 작은아이가 집 앞에서 놀다 부딪쳐 눈 옆이 찢어지는 사고가 났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밤새고 온 직후, 큰아이가 놀다가 사고로 윗 앞니 영구치 네개가 잇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밀어넣고 정신없이 치과로 달렸다.

그후 흉한 몰골로 서로 자기가 더 많이 다쳤다고 다투는 두 아이를 보며 실소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쏟아졌던 여러 형태의 도움과 사랑에 감사하기도 했던 시간들. 차츰 요령있게 팬데믹을 살아나가게도 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 외상이면 신경이 다 죽는다고 임플란트를 장담하던 치과의사가 무색하게끔, 큰아이의 네 영구치는 거짓말처럼 모두 살아서 붙었다. 다만 치열도 인상도 조금 달라졌다. 작은아이의 눈 상처도 다 아물었다. 다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에는 잘 보이는 작은 분홍색 흉터가 남았다.


코비드19는 이렇게 그 존재감을 아이들 몸에 작지만 분명하게 새기고 간다. 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에도 저릿하게 새기고 간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가장 힘들었던 반환점을 돌아 팬데믹을 관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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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은씨는 Buck 노화 연구소/ UCSF에서 뇌의 노화 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몇 해 전 실리콘밸리로 이주해 엔지니어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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