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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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미련 때문에

2021-07-22 (목)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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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부심과 긍지로 한국산 뱀장어 가죽제품을 수입해 도매업을 했었다. 까다로운 공정이라 원가는 높았지만 부드럽고 질기며 빛깔이 고와 큰 인기가 있었다. 전국으로 배송까지 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자주 방문하던 부부가 어느 날! 바로 맞은편에! 똑같은! 종목으로 가게를 열었다. 그 후 너도나도 진출해 질 떨어진 상품을 팔면서 사업은 사양길로 들어섰다. 가발사업을 유태인이 했다면 자자손손 먹고 살았을 거라고 하듯, 눈앞의 이득만 보이는 DNA가 우리에겐 있는 것 같다. 가뜩이나 앞 가게에 열 받던 터라 세일조차 않은 채 많은 재고를 안고 사업을 접었다. 그동안 기부도 선물도 많이 했지만 원가 생각에다 ‘언젠가’ 돌아올지 모를 유행에 대한 희망과 게으름이 겹쳐, 정리 못 한 채 빌린 창고에 있는지가 00년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표나 기념품 등 시시콜콜 모으길 좋아해 엄마는 그런 내게 ‘고양이 뿔 빼곤 다 있다’는 칭찬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한 말을 가끔 하셨다. 결혼 후 수집은 놓았지만 사업을 할 때 보상심리나 스트레스를 핑계로 옷이나 물건을 잘 사들였다. 문제는 들인 돈과 시간에다 감정 담긴 인연과 미련 때문에 그들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읽거나 못 읽은 책들, 신문 스크랩, 전시회나 연주회 팸플릿, 비디오테이프에다, 아이들 어릴 적 그린 그림과 사소한 상장 상패도 버리지 못해 때론 그들이 나를 소유한 느낌이다. 널뛰던 감정도 유통기간이 있건만 추억에다 작별 순서 매기기가 쉽지 않다.

물건을 쌓아놓는 증상을 호딩(hoarding)이라 하는데, 전문가들은 소유물과 분리가 어렵다면 그도 위험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들은 필요 없고, 관심 없으며, 기억나지 않는 물건은 버리라고 한다. 돌아가신 엄마 옷더미 속에서 목돈이라도 챙긴 딸들의 불평은 좀 덜 하지만, 어머니 유품 정리를 하고나면 친구마다 고개를 흔든다. ‘우린 절대 자식 힘들게 말자’고.

창고 비가 또 올랐다. 뭘 버릴까보다 뭘 남길까가 화두로 적게 소유하고 간소하게 사는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다. ‘버릴 게 없다’고 우기는 대신, 하루 한 개든 매일 조금씩이든 꾸준히 버리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그동안 발목 잡아온 ‘언젠가’라는 달콤한 유혹은 떨쳐버리고, 8월 안에 창고정리를 하고 말리라는 비장한 공개공약과 함께 물건 다이어트에 나서야겠다.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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