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사람은 변한다

2021-07-15 (목)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크게 작게
라면이나 끓이던 남편이 어느 날 자진해서 부엌으로 납셨다. 평생 밥벌이로 고생하더니 취미도 밥에서 찾나했는데 주문생산에 개발도 가능한 만능셰프가 됐다. 멸치 끓는 냄새에 또각또각 칼국수 써는 소리를 듣자니 뒤늦게 맞은 로또로 해죽 웃는 입에 침이 고인다.

매주 금요일은 딸네가 밥 먹으러 오는 날이다. 그날은 네 손주가 돌아가며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끈끈한 밥 공동체가 된다. 모락모락 김나는 공깃밥에 돈가스, 탕수육 등을 먹는 아이들의 엄지척 남발의 날이기도 한데 깨작깨작하다 걸리면 할배셰프는 ‘원래의 그 할배’로 돌아간다. 프로스트가 어릴 적 숙모 집 마들렌과 홍차의 맛과 향기를 추억하며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탄생시켰듯, 매주 볼이 미어지던 손주들도 자신이 빚은 만두를 골라먹으며 익힌 맛으로 유년의 추억을 따습게 그리리라. 딸 또한 ‘아빠표 만능양념’의 추종자다. 거기다 호박 몇 점에 새우 몇 개 떨어뜨린 순두부나 쇠고기와 듬성듬성 썬 대파에 계란만 풀면 훌륭한 육개장이 되니, 180도 달라진 아빠에게 감동할 뿐이다. 백 선생 학습의 힘인지 주위에도 부엌에 들어가는 남편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메뉴만큼 다양해진 장비로 부엌은 복잡하다. 때로는 사는 것보다 비용, 시간, 노동이 더 들어 보여 한 마디 하고 싶어도, 밥숟가락 딱 놓는 걸 보거나 목 메인 이별가를 부르지 않으려면 간섭이나 지적은 금물이다. 평생 물리지 않는 것이 밥 먹는 일이고 집 밥 삼시 세끼가 인생사가 된 팬데믹 시대, 밥이 보약이고 나이 들수록 밥심이 최고다. 놀라운 변화에 감사하며 적극적인 격려와 칭찬, 보조나 열심히 하고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내 남은 끼니는 안정권 같다.

사람의 습관이나 성격, 인성 변화에 대해서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죽어야 변한다, 연장은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지 못 한다 등 부정적인 고정관념뿐이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세월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하물며 그 안에서 교육 받고 반성하며 어떤 계기로 깨달음과 성찰을 얻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나이 드는 만큼 생각도 바뀌어 태도나 행동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엌에서 쫌 해방됐다고 하는 말 같아 약간은 수상한 발언이긴 하나, ‘사람은 절대 안 변해’라는 확신에 찬 절대적 틀은 깨져야 할 것 같다.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