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발레 이야기

2021-07-06 (화) 12:00:00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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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발레 하면 발끝으로 서는 포인트 슈즈를 신고 날개 달린 천사처럼 가볍게 공중을 부유하는 이미지나 아니면 옛 유럽에 있을 법한 왕자와 공주 이야기를 연상하곤 한다. 위엄있는 포즈에 가느다란 팔과 긴 목선, 강하지만 간결한 다리의 곧은 모습 등이 클래식 튜튜의 위엄과 함께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발레 무용수에게는 현실이며 발레를 훈련한다는 것은 모든 상식을 거스르는 고통스러운 구도의 길과도 같다. 예를 들어 발끝을 아래로 끌어내려 힘을 주는 ‘포인트’라는 동작이 있다. 이 포인트 동작은 발레와 다른 춤을 구별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직립보행을 하려면 땅에 발바닥 전체가 닿게 번갈아 가며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발레에서는 발등을 둥그렇게 있는 힘껏 주어 발가락 끝부터 단계적으로 딛어 나간다.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듯이 말이다. 이 불편한 동작을 하루에도 몇백 번씩 훈련을 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이렇게 연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슈즈를 신기 위함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골반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안쪽 근육을 사용하여 다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어찌 보면 발레는 보여지는 부분보다 가리워져 있는 부분의 훈련이 더 혹독하고 중요하다. 흔히 운동에서 사용하는 크고 강한 바깥쪽 근육보다는 허벅지 안쪽에 잘 보이지도 않는 다리 깊숙이 존재하는 얇고 긴 근육들을 오랜 시간을 들여 훈련하여 사용한다. 다리를 높이 드는 동작의 경우 관객들은 발레리나가 얼마나 높이 다리를 들고 오래 지속하는지를 즐기지만, 발레리나는 역으로 서 있는 다리 즉, 지탱하는 다리가 흔들림 없이 곧고 강하게 지면을 향해 서 있을 수 있게 집중을 한다.

이런 특징들을 보면 참 삶과 많이 닮아 있다. 아름다운 삶일수록 외관과 외형에 치중하지 않고 본질에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발레 무용수에게 발레는 매일매일 연습을 반복하는 지루한 일상을 기쁨으로, 만족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하는 삶의 책무를 준다. 하루 6시간 이상의 연습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기쁨을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철저하게 익숙하고 쉬운 것들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일상을 뛰어넘는 자들. 그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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