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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수당은 죄 없다

2021-06-09 (수) 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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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갖고 그래~”

1988년도 당시 개그맨 최병서씨가 성대모사를 하면서 만든 유행어다. 이 유행어로 그는 떴다. 한 마디로 얘도 잘못이고 쟤도 잘못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것이 이 유행어의 핵심이다.

이 말은 다시 1995년 전두환씨에 의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정에서 실제 사용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전씨의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에는 애초 유행어에 “너는 욕해라. 나는 신경 안 쓴다”는 우월감과 상대를 무시하는 뜻이 담기면서 한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외치고 싶을 만한 주인공이 나타났다. 바로 ‘실업수당’이다.

제조 및 생산업계와 요식업계의 극심한 구인난의 원인으로 실업수당이 지목되면서부터다. 실업수당을 받는 것이 일터에 나와 노동으로 받는 임금보다 더 많다 보니 노동 의욕을 버리고 일터 복귀를 꺼린다는 주장으로 실업수당의 구인난의 주범으로 지적 받고 있다.

아예 앨라배마, 아칸소, 미시시피, 몬태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 다코타 등 6개 주는 일주일에 300달러의 추가 연방정부 실업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터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9월 지급 만료 예정인 추가 실업수당의 지급 중단 결정한 주 중 미시시피를 제외하고는 3월 기준 전국 실업률 보다 훨씬 낮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주들이라 실업수당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일부 실업자들 중에 일터에서 받는 급여에 비해 실업수당을 받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연 소득이 3만2,000달러에 못 미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라는 게 연방 노동부 자료의 결과다. 2019년도 미국 내 가구의 연평균 중간 소득은 6만8,703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연소득 3만2,000달러의 노동자들이 실업수당을 받으며 집에 머무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실업수당은 노동 의욕을 꺾는 마약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오히려 임금을 포함해 열악한 근무 환경이 일터 복귀를 지연시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다쳐서 노동력을 상실하거나 목숨을 내놓을지도 모르는 근무 환경의 개선 없이 ‘돌아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방적이다.

여기에 학교에 가지 않는 자녀들과 병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여성 노동 인력들이 대거 노동 시장에서 이탈해 있는 것도 구인난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구인난의 원인을 실업수당으로 돌리며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것은 구인난 현상의 일면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따지면 구인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지 않을까? 임금을 더 주면 되니까 말이다.

구인난의 진짜 원인과 답은 일터라는 노동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실업수당은 죄가 없다.

<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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