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언제부터 돈을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전문가들은 그 첫 단계는 동전이나 화폐가 아니라 장부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약 3만 년 전 물건의 숫자를 막대기에 줄을 그어 표시한 ‘장부 막대기’가 발견됐는데 이것이 물물 교환에서 화폐 경제로 가는 첫 단계였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귀한 조개 껍질이나 가축, 소금과 같이 희귀성이 있고 쓸모가 있는 물건들이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영어로 ‘돈에 관한’이란 뜻의 ‘pecuniary’나 월급을 뜻하는 ‘salary’에는 이런 흔적이 남아 있다. ‘pecuniary’는 원래 ‘소’, ‘salary’는 ‘소금’이라는 뜻이다.
화폐 경제가 본격 시작된 것은 기원전 7세기 지금 터키인 리디아에서 동전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지금 동전처럼 동그랗고 국가의 인장이 찍힌 금화와, 은화, 동화들은 인근 지역에 널리 퍼지면서 지중해 연안 국가들 사이 무역이 번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동전은 무거워 가지고 다니기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지폐다. 11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진 지폐는 가볍고 찍어내기 쉬운 장점이 있으나 그것이 또한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돈이 궁한 정부는 힘들게 세금을 걷느니 이를 찍어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원나라가 망한 이유의 하나도 쪼들린 재정을 지폐를 남발해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도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폐를 찍어 해결하려다 초인플레를 불렀고 그것이 나치의 등장과 공화국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 각국 정부는 돈을 인쇄하는 수고도 하지 않고 중앙 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통화량을 늘린다. 컴퓨터 키를 몇 번 두드리면 재무부 구좌에 돈이 입금되고 재무부는 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요즘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만든 돈도 널리 통용된다. 소위 ‘가상 화폐’(cryptocurrency)라는 것이 그것이다. 1983년 암호 전문가인 미국의 데이빗 차움이 처음 고안했다고 하는데 컴퓨터 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돈이다. 그는 처음 이 돈을 ‘이캐시’라 불렀다 훗날 ‘디지캐시’로 이름을 바꿨다. 미국의 최대 정보 기관인 ‘국가 안전국’(NSA)도 1996년 ‘익명의 전자 돈’이란 논문을 통해 가상 화폐가 가능함을 설명했다.
가상 화폐가 일반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가명)라는 사람이 ‘비트코인’이라는 것을 만들면서다. 전자 장부인 ‘블록체인’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 돈은 2017년 미래의 화폐로 각광받으면서 1,000달러에서 2만 달러 가까이 올랐으나 2018년 거품이 꺼지면서 80%나 폭락했다.
그랬다가 작년 다시 바람이 불면서 오르기 시작했고 올초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이를 추켜세우자 6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국세청이 1만 달러 이상 거래 신고를 의무화하고 중국 정부가 그 개발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세가 꺾였다. 설상가상으로 머스크마저 더 이상 테슬라에서 이를 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5월 들어서만 40%, 최고치에서는 절반이나 떨어졌다.
미국도 미국이지만 한국에서는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상 화폐 붐이 일고 있다. 직장인은 물론이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상 화폐 거래를 하지 않으면 화제에 끼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투자 종목이다. 올 1/4분기 신규 투자자만 250만인데 이중 20대가 33%, 30대가 31%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가상 화폐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각국 정부가 규제에 나설 경우 어떻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 외에는 밑바닥 인생에서 탈출할 길이 없다는 절망감과 누구는 일찍 시작해 몇십 배를 벌었다는데 대한 부러움이 이 투기판에 뛰어든 이유의 거의 전부라 보아야 한다.
가상 화폐는 이름 그대로 컴퓨터 안에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돈으로 내재적 가치도 전혀 없다. 투자가들이 몰려들면 오르고 빠지면 떨어지는 것이다. 최근 머스크 한 마디에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것을 봐도 얼마나 위험한 지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2억을 날린 한 20대 청년이 생을 조기에 마감했다. 한국 정부는 젊은이들 눈치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그 위험을 널리 알리고 규제를 엄격히 하는 것이 앞으로 올 더 큰 비극을 막는 길이 될 것이다.
<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