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중간 선거는 민주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중간 선거 자체가 원래 집권당에게 어려운데다 40년래 최고 인플레, 범죄와 마약, 밀입국자 급증, 성전환자 지원 등 미국인 다수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슈가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책을 바꿔 국민들이 원하는 길을 가는 대신 꼼수로 선거를 이기려 했다. 그 방법이 2020년 대선은 부정 선거임을 도널드 자신보다 더 신봉하는 극단적 MAGA 후보를 공화당 예선에서 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후보와 본선에서 붙으면 미국민들은 아무리 민주당이 밉더라도 이들에게 표를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민주당은 최소 8개주 예선에서 이런 극단주의 후보를 위해 1천900만 달러를 썼다. 이 전략은 성공을 거둬 이들은 대거 본선에 진출했고 대체로 낙선했다. 뉴햄프셔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나온 돈 벌덕, 조지아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나온 허셸 워커, 펜실베니아 주지사 후보로 나온 덕 마스트리아노, 애리조나 주지사 후보로 나온 케리 레이크 등이 그들이다.
민주당의 이런 작전에 말려 피를 본 사람 중 가장 억울한 사람은 미시건의 연방 하원의원 피터 마이어다. 그는 공하당 의원 중 드물게 소신을 가지고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으나 민주당의 극단주의 후보 지원 정책에 밀려 공화당 예선에 탈락했고 사실상 정계에서 퇴출됐다. 민주당은 그 대신 나온 존 깁스를 눌러 이겼다.
이 작전 덕에 민주당은 연방 하원에서 근소한 표차로 지고 상원에서는 오히려 의석수를 늘렸다. 선거에서 크게 졌더라면 정책을 고치고 유권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했을텐데 예상됐던 공화당의 ‘붉은 파도’가 밀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가오는 대선도 문제 없다는 안이함에 빠졌다.
이는 1994년 중간 선거 때의 민주당과 대조적이다. 1992년 불황이 깊어지며 한 때 90%의 지지율을 자랑하던 아버지 부시를 꺾은 빌 클린턴은 취임하자마자 동성애자 군 입대 같은 미국인이 별 관심도 없는 이슈를 들고 나왔다. 경기는 나아지지 않는데 극단적 좌파 정책을 펴는 것을 본 미국인들은 1994년 민주당에 40년만에 연방 하원을 내주는 최악의 참패를 안겨줬고 클린턴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정신을 차린 클린턴은 결혼을 남녀간의 결합으로 정의한 ‘결혼 수호법’, 웰페어 수혜자 자격을 제한하는 ‘웰페어 개혁법’ 등에 서명하며 중도로 돌았고 1996년 대선에서 여유있게 승리했다.
올 대선은 질 때 져야하는 선거를 꼼수로 이기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붉은 파도’가 휩쓴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연방 상원에서 다수당이 된 것은 몬태나, 오하이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이겼기 때문인데 이는 원래 공화당 강세지역이다. 경합주로 분류됐던 미시건, 위스콘신, 네바다, 애리조나에서는 오히려 민주당이 이겼다. 연방 하원도 220석 남짓으로 다수당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현재 의석에서 별로 늘지 않고 현상 유지 정도다.
대선에서도 도널드가 경합주에서 모두 이기기는 했으나 표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승부를 결정지은 펜실베니아, 미시건, 위스콘신의 승패는 3개주 총 유효표 1천600만 표 중 24만표가 갈랐고 투표율 차이는 1~2% 포인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들 유권자 중 13만 명만 마음을 바꿔 먹었으면 3개주와 대선의 승자는 해리스였다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가 공화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패배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는 총 유효표의 향방이다. 올 대선에서 도널드에게 표를 던진 사람은 총 7천640만명이다. 이는 2020년 선거에서 그가 받은 7천420만표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해리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7천370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2020년 바이든이 받은 8천130만표와 비교하면 무려 800만표나 준 것이다. 2020년 더 좋은 세상이 올 줄 알고 그를 찍어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차마 도널드를 밀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고물가로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고 제대로 반성조차 않는 민주당에 또 표를 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투표장에 나오기를 거부한 것이다.
올 선거에서 도널드보다 더 열렬히 2020 대선이 부정 선거였다고 외치던 케리 레이크 애리조나 연방 상원의원 후보나 도널드로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보다 낫다는 평가를 들었던 자칭 ‘흑인 나치’ 마크 로빈슨 노스 캐롤라이나 주지사 후보가 낙선한 것을 보면 미국민들이 MAGA를 다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올 대선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는 싸움을 꼼수로 이겨보려는 당은 나중에 더 큰 심판을 받고 패배에서 교훈을 찾고 유권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당은 결국 이긴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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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