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억 달러 상품수지 불균형 해소방안 제시 않는다며 대로
▶ 스위스 업계 “트럼프도 고가시계 좋아하면서…” 날벼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위스산 수입품에 39%라는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키로 결정한 것은 상품수지 불균형 해소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스위스 대통령에게 '격노'했기 때문이라는 뒷얘기가 나왔다.
2일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따르면 양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스위스 시간 오후 8시에 전화통화를 했다.
워싱턴DC 시간으로 오후 2시였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무역합의 시한이 10시간밖에 남지 않은 때였고, 만약 합의가 불발되면 스위스에 31%의 상호관세가 부과될 예정이었다.
양국간 통상관계의 공정성에 대한 양국 대통령의 인식 격차는 엄청나게 컸다.
스위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연간 400억 달러(56조 원) 수준인 스위스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으면서 스위스가 미국으로부터 돈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스위스 측의 조치를 요구했다.
그런데도 켈러-주터 대통령이 상품수지 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될만한 제안을 내놓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로했으며 몇 시간 후에는 스위스에 대해 8월 7일부터 39% 상호관세율을 적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에 발표했던 31%보다 오히려 훨씬 더 높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켈러-주터 대통령은 통화 다음날인 8월 1일 '스위스가 미국으로부터 돈을 훔쳐왔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무역적자에 상응하는 관세율을 얻어맞아야 한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발언했다.
그는 39% 관세가 발효되는 8월 7일 전에 워싱턴DC로 출장을 가서 협상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출장을 갈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양측 입장이 더 좁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스위스산 상품에 39% 관세를 실제로 적용키로 한다면, 스위스는 관세율이 15%에 불과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에 비해 훨씬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트럼프가 지난달 31일 통화에서 상품수지 적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서비스, 외국 투자, 스위스 측의 협조 제안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그림을 보지 않은 것은 스위스 측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양국 실무진이 협의해 이미 7월 초에 무역합의 초안을 만들었고 스위스 정부가 7월 4일에 이를 승인했으며 미국 측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USTR)도 이 안에 동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승인은 요식행위에 가깝다고 스위스 측이 오판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스위스는 도널드 트럼프와 막판 통화를 하면서 혹독한 현실 점검을 당했다. 미국 대통령의 직접 승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무역합의는 완료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백악관 공보실은 블룸버그의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백악관 관계자는 스위스가 무역장벽에 대해 의미있는 양보를 거부했기 때문에 양국 대통령 통화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서, 매우 부유한 국가는 주요 항목에 대한 양보 없이는 합의 타결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의 대미 수출액 중 60%를 차지하는 제약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관세와 별도로 트럼프 행정부가 약값 인하를 매우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스위스 제약업계는 심각한 이중고에 빠졌다.
당초 합의안 초안에는 스위스 주요 제약사들이 미국에 의약품을 수출할 때 관세를 면제해주는 내용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8월 1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는 스위스산 의약품에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양국의 합의안 초안이 서명만 남겨놓은 상태였다는 주장에 대해 "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나라들이 문서를 주고받으면서 지도자들에게 가져가서 지침을 받아온다"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는 것이며, 이 점은 무역협상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롤렉스, 파텍필립, 오메가 등 스위스산 고가 시계를 구매하려던 사람들이나 이런 제품들을 판매하는 스위스 기업들과 미국 내 유통업체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스위스시계산업연맹은 스위스산 상품에 대한 미국의 39% 수입관세 부과 결정에 대해 "매우 실망했고 놀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롤렉스 등 다양한 스위스산 고가 시계를 착용해왔고 그의 가족과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고가 시계 부문 컨설턴트 올리버 뮐러는 "게다가 무엇보다 그(트럼프 대통령)는 스위스 시계를 좋아하면서!"라고 블룸버그 기자에게 한탄하면서 예정대로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내 소매가격이 12∼14% 인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