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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과 한반도 안보

2024-10-2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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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도널드는 정치적 소신은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는 원래 민주당원이었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주요 정치적 이슈에 대한 소견도 그렇다. 그 대표적인 게 낙태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원래 낙태권 지지자였다. 그러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 보수파의 표가 필요하자 낙태권을 인정한 ‘로우 대 웨이드’ 대법원 판결을 뒤집겠다고 공언했고 보수파 대법관 3명을 지명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켰다. 많은 기독교도들이 아직도 그를 지지하는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막상 대법원 판결로 낙태권이 사라지자 캔사스 등 보수적인 주에서조차 낙태를 금지하는 헌법 개정안이 부결되는 등 미국민 대다수가 낙태 금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도널드는 이번에는 연방 의회가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자신은 반드시 이를 부결시키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어차피 기독교 표는 자신에게 올 것이고 낙태는 이러나 저러나 관심밖이니까 쓸데 없이 표를 손해볼 필요없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도널드에게도 신념은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민은 나쁘고 미국의 주인은 백인이라는 생각이다. “멕시코 강간범”부터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까지 그의 발언에 이민자들이 미국 발전에 기여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폭력 시위를 벌였을 때는 그는 “양쪽에 모두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두둔했다. 또 ‘프라우드 보이즈’라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왜 규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들이 나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또 다른 그의 신념 하나는 관세는 좋다는 것이다. 그는 집권시 모든 수입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그것이 인플레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상대국의 보복 관세로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세계 경제가 어떤 타격을 입는다는 데는 관심이 없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는 “중국산 물품에 200% 관세를 부과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 두 가지와 맞먹는 그의 소신이 있다면 미국이 동맹국의 방위를 위해 쓰는 돈은 한푼도 아깝다는 것이다. 도널드는 이미 방위비를 제대로 내지 않는 나토 동맹국은 러시아가 쳐들어 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지난 주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 전쟁이 시작되도록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러시아의 불법 침략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에게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에 끝낼 수 있다고 공언했는데 이로써 그가 어떤 식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는지 명확해졌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필연이라 봐야 한다.

이 와중에 북한 특수 부대 요원 1만 2천명이 러시아로 파병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주요 언론들은 국정원을 인용, 북한이 특수 부대 등 4개 여단을 우크라이나 전에 투입키로 했으며 일부는 이미 이동했다고 전했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 군인에게 군복과 군화 등 보급품을 원활하게 지급하기 위해 한글 설문지도 준비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궁금한 것은 그 대가로 북한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이다. 공식 확인된 바는 없으나 지금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면 답은 간단히 나온다. 그것은 핵무기로 미국을 확실히 때릴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ICBM) 대기권 재진입과 미국의 선제 타격을 피할 수 있는 핵 잠수함 건조 기술, 그리고 핵 보유국 국가라는 국제적 인정이다.

러시아는 이를 해줄 수 있는 나라면서 지금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잘 맞아 떨어질 수 없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은 뒤에는 미국과 핵 보유국 지위를 놓고 협상을 벌일 게 뻔하다. 거기다 북한은 이미 지난 6월 28년만에 전쟁 발생시 자동 개입 조항이 들어간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 관계를 복원한 상태다. 한반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러시아 개입 길을 열어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 100억 달러는 내야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최근 한미 양국이 체결한 2026년부터 11억 달러를 내기로 한 합의안을 비판한 것이다.

도널드는 애초부터 한국의 안보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고 이에 고무된 김정은이 자신을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는 도널드와 다시 협상을 벌이면서 핵이 없는 한국을 상대로 공갈을 치거나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그가 미군의 피를 흘려가며 한국을 도와줄 지는 매우 의문이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도널드가 재선되어서는 안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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