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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년만에 가장 중요한 선거

2024-10-2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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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 중 미국은 특이한 나라다. 혈연과 지연이 아니라 이념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 무엇이냐는 1776년 7월 4일 탄생한 ‘독립 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중에는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권이 포함돼 있다. 이들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창설되었고 … 그 권력의 정통섵은 피치자의 동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 목적을 파괴하려 할 때 그 정부를 바꾸거나 폐기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이러한 위대한 목표를 내걸었지만 신생 미국의 현실은 이상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예제다. ‘독립 선언서’를 쓴 토머스 제퍼슨은 “신이 정의롭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우리 나라의 앞날이 두렵다. 그의 정의가 언제까지 잠잘 수는 없다”고 썼지만 그런 그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노예들을 끝내 해방시켜주지 못했다. 그럴 경우 입을 경제적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1787년 연방 헌법이 제정되면서 미국의 노예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헌법은 노예제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노예는 백인 수의 3/5로 계산한다’는 ‘3/5 조항’을 넣어 남부 노예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줬다. 노예들은 정작 투표권은 없으면서 이들을 가진 남부주들은 백인 인구가 실제보다 많은 것으로 계산돼 연방 하원 의석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독소 조항은 ‘모든 주는 도주한 노예를 원소유주에 돌려줘야 한다’는 ‘도주 노예 조항’(4장 2조 3항)이다. 이 조항 때문에 노예제가 폐지된 북부주로 도주한 노예도 언제든지 다시 잡혀갈 수 있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노예제가 건국 이념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남부주들은 이것이 ‘남부의 고유한 전통’이라느니 ‘성경도 노예제를 인정했다’느니 등 허무맹랑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옹호했다. 이를 포기할 경우 노예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남부 경제가 입을 타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1860년 에이브러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남부주들은 연방을 탈퇴하고 연방 포대에 포격을 가함으로써 남북 전쟁을 일으켰다. 링컨은 자신은 연방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노예제를 폐지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고 말했지만 소용 없었다.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새 주가 계속 늘어날 경우 자신의 세력이 약화된다고 본 남부주들이 먼저 칼을 뽑은 것이다.

남북 전쟁은 장장 4년에 걸쳐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을 합친 것보다 많은 60만명의 사망자를 낸 후 끝났고 1865년 수정 헌법 13조가 통과되고 나서야 노예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 후 100년이 지난 후까지도 흑인 등 소수계는 온갖 차별에 시달렸다. 이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차별하기 위해 ‘짐 크로우’라 불리는 악법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4년 ‘연방 민권법’과 1965년 ‘연방 투표권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사라졌다. 한인과 같은 소수계가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링컨이 당선된 지 164년, ‘연방 민권법’이 통과된지 60년이 되는 지금 한인을 비롯한 유권자들은 다시 선택해야할 때가 왔다. 아버지가 준 돈으로 플레이보이의 삶을 살다 6번 파산하고 수십명의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고발을 당했고 본인도 이를 실토했으며 그 중 한 여성한테 한 추행 행위가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은데 이어 포르노 배우와 섹스 스캔들을 덮기 위해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동료 시민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중범 유죄 평결을 받았으며 2번 탄핵당하고 2020년 대선이 부정 선거라는 허위 주장을 일삼으며 대중을 선동해 평화적 정권 이양을 방해하려 한 혐의등 4개 중범죄로 기소되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루저 도널드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려 하고 있다. 미국민이 이를 허용한다는 것은 지난 250년간 선조들이 지켜온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념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다.

빵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빵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던 한 나사렛 목수는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그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 미국인들은 팥죽 한그릇에 장자 상속권을 판 에서처럼 빵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민주 공화국의 가치를 포기하려 하고 있다.

90년전 인플레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들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했지만 빵을 약속한 히틀러에게 정권을 맡겼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두 안다. 지금 미국민들이 똑같은 실수를 한다면 자신과 그 후손들은 오랫동안 울면서 후회하며 눈물 젖은 빵과 팥죽을 먹게 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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