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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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 전망

2021-05-27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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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5일이면 캘리포니아의 경제는 완전히 정상화된다고 한다. 지난 1년3개월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웅크려 지냈던 기억밖에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백 투 노멀’은 선언되겠지만 정상을 되찾기 전에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

동네에 하나 뿐이던 죽집은 문을 닫았다. ‘1월15일자로 폐업합니다’라는 쪽지가 문에 붙어 있다. 넉달 전에 영업을 중단했지만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어 몰랐다. 지날 때마다 언제 다시 문을 여나 생각했던 삼거리의 작은 식당은 무엇 때문인지 바닥까지 파헤쳐져 있다. 곱창전골과 부대찌게가 좋았던 이 집도 이제 덩그러니 간판만 남겼다.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하다. 세탁소 앞을 지나며 문득 ‘세탁소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탁소야 말로 힘들었다’고 업계에서는 전한다. 미처 짐작하지 못한 뜻밖의 이유로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태풍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덮쳐 드러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내상이 다 파악되지 않고 있는 이민자의 비즈니스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작고한 LA 경제개발사(LAEDC)의 수석 경제학자 잭 카이저 생각이 난다. 저잣거리의 실물 경제에 정통했던 그는 LA 지역경제 전문가였다. 특히 한국어 미디어에게는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부동산, 건축, 요식업 등 스몰 비즈니스의 세세한 전망까지 들려줘 K타운 경제의 1년을 예측 가능하게 했다. LA타임스는 지난 1985년 이후 그를 인용한 기사가 3,500여 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요즘 같은 때 그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오렌지카운티 경제는 전문가가 따로 있었다. 제임스 도티 채프만 대학 전 총장이다. 분기별로 내놓은 경기 전망 리포트는 48분기 동안인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지역신문의 보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한창 부동산 경기가 출렁일 때 그가 내놓은 오렌지카운티의 시장 전망은 거의 족집게 수준이었다.

경기 전망은 로욜라 매리마운트대학 손성원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때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경제 전망 전문가이던 그는 웰스파고 은행 수석 경제학자이던 시절 AP등 주요 언론이 빼놓지 않고 찾던 전문가였다. 그는 특히 LA 한인경제는 따로 떼어 분석하고 전망을 들려줘 유용했던 기억이 있다.

전망은 위험도가 높은 비즈니스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금방 진위가 확인되기 때문에 웬만한 전문가도 내놓기를 꺼린다. 특히 환율 전망 등을 문의하면 손사래를 친다. 위에 말한 경제학자들의 경기 전망은 오랜 기간 검증된 것이어서 높은 신뢰를 쌓았다.

지난달 향후 20년간 세계 정세를 전망하는 보고서 하나가 발표됐다.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 정보국장실의 국가정보 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가 낸 ‘세계 정세’(Global Trends)가 곧 그것이다. 미국의 스파이 에이전시들이 수집한 정보를 취합하고 평가해 4년에 한 번씩 내는 보고서여서 중요하다. 미국 정보당국은 오래 전부터 정치인들에게 팬데믹을 경고해 왔다. 국제정치와 미국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보맨들은 팬데믹 후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암울할 것’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번 팬데믹은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평가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2차 대전 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재난으로 자체 평가하면서도 예고편으로 여길 정도로 지구촌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 영향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이런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줬다. 기후 변화는 세계적인 이주 현상을 촉진시키고, 대규모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정부의 무능과 사회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무력 폭동도 전망된다. 위기의 씨앗들은 질병에서 기후, 신기술에서 재정에 이르기까지 두루 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그 동맹들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충돌 우려와 지역의 불안정성은 고조될 것이다. 한 나라가 세계를 압도하는 일은 이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테크놀러지는 경제와 커뮤니케이션을 향상시키지만 동시에 더 첨예한 정치적인 긴장과 갈등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보고서는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서 답게 최상은 미국이 리더십에 새 장을 열어 경제와 기술 발전으로 세계의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권위적인 체제를 피해 최고급 인력들이 탈출해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영향력 감퇴다. 질서의 재편으로 대규모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포스트 팬데믹은 문제의 끝이 아니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은 찾기 어려운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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